삶의 경계에서 깨달은 것들
비행 중, 카고 문이 열렸다는 캡틴의 콜을 받고,
나는 오늘이 마지막 비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캡틴은 곧 목적지에 도착하니,
예정대로 착륙하겠다고 결정했다.
다행히 이날은 1시간 남짓의 짧은 비행이었고,
캡틴은 러시아 공군 출신의 30년 베테랑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랜딩 절차를 준비했다.
준비를 마치고, 점프싯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이머전시 프러시저를 되새겼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여유는 없었다.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수백 명의 안전만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착륙은 성공적이었다.
캡틴은 여유 있게 농담을 던졌다.
"너희는 오늘 다시 태어났다.
가족한테 사랑한다고 꼭 전화해라."
무사히 크루 버스를 타자,
그제야 가족,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캡틴의 말대로 전화를 걸었지만,
걱정할까 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안부를 묻고, 사랑한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매 비행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비행 전에는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수천 시간 하늘과 땅을 오가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기체 결함으로 인한 딜레이나 결항은 양반이다.
오버헤드빈의 화재경보로 회항을 하기도 했고,
기상 악화로 3시간을 상공에 떠돌다
다른 공항에 비상착륙 하기도 했다.
심정지가 올뻔한 승객에게 CPR을 했고,
호흡곤란 환자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예고 없는 터뷸런스에 천장으로 튕겨 올라가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타박상을 얻기도 했다.
이슬람교는 죽기 전 한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ecca)를 순례해야 한다.
여유가 없이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야
겨우 비행기 티켓을 끊고 백발의 머리로 순례를 떠난다.
죽음을 앞둔 쇠약한 노인들은 때로는
비행기 안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종종 있는 일이라 기내 사망에 대한 절차도 배우고
훈련받는다.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하는 그들의 얼굴을 평화롭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지만, 불안함이나 두려움보다는
신과 가까워진다는 기대와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렇듯 삶과 죽음은 늘 나란히 걸어간다.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를 품고 완성된다.
January(1월), 야누스의 얼굴을 뜻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문지기 수호신 야누스는
뒤통수의 얼굴로 과거를, 정면의 얼굴로 미래를 본다.
야누스처럼 경계선에 서면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
하늘과 땅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매 순간을 마지막 비행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어떨까?
마지막에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진짜로 지키고 싶은 것만 남기며, 사소하고 쓸데없는 집착과 타인의 시선은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
거창한 계획도, 허무한 경쟁도 필요 없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랑하게 된다.
오늘 내뱉는 말이 마지막일 수 있음을 알고,
오늘 내딛는 걸음이 마지막일 수 있음을 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 얼마나 빛나는지 보인다.
나는 이 경계 위에서 두려움을 벗고 가볍게,
하지만 단단하게 숨을 들이마신다.
마지막일 수 있는 오늘을,
생생하게 살아내려 한다.
그렇게 살아내는 하루는 ,
그 어떤 화려한 비행보다도 아름다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