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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순간, 다시 숨을 고르다.

조급함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by 장이엘
Ohrid Lake

나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의 속도로 숨 쉬고 있고,

한국의 속도는 제법 빠르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숨 가쁘게 살아가는 나라는 정말 드물었다.


마드리드의 좁은 골목길 슈퍼에서 낮잠을 즐기던

스페인 현지인들을 보면 의아하고 불편했다.

나는 지금 빨리 이 물건을 사고 싶은데,

그들의 태도는 느리고 게을러 보였고,

나에게는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런 문화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급함 없이 여유롭게 웃는 그들의 표정에서

나는 ‘살아있음’의 생기를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늘 움켜쥐고 있던 조급함이 조금씩 풀어졌다.


중국의 만만디(慢慢的:천천히 해도 된다.),

스페인,이탈리아,필리핀의 시에스타(Siesta:낮잠시간)

덴마크의 휘게 (Hygge: 느린 삶이 주는 평온),

호주의 노워리즈(No worries :괜찮아) 문화는

대표적인 멈춤, 그리고 느림의 문화이다.


반면 한국의 “빨리빨리(Pali Pali)” 문화는

Hurry-Hurry culture로 알려져 있다.

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속도와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이제는 한국인의 몸에 DNA처럼 새겨졌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국가예산의 40%를 원조로 충당하던 최빈국에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이루었고,

순식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빠르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기질 덕분에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었고

국민들의 스트레스도 함께 커졌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이것은 우리를 앞서게 했고 긍정적인 결과도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병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1위이고,

우울증 유병률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속도가 곧 성공이라 믿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운 속도’를 잃어버렸다.


내가 그동안 느꼈던 조급함은

불안과 불만, 그리고 몸과 마음의 병으로 이어졌다.

조급함은 결국 관계까지 상처 내고,

삶의 의미를 잊게 만드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폴란드의 속담에는

"악마는 사람이 빨리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라는 말이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도 현대사회의

‘조급한 경쟁’이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아넣는다고

경고했다.


내가 더 앞서야 한다는 집착,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집착.

이 집착이 조급함과 만나면, 지옥이 시작된다.


호주에서 만난 바리스타는 말했다.

“커피는 서둘러 내리면 맛이 없지.”

손님이 많아도 그는 늘 커피를 천천히 내렸고,

손님들도 마치 당연하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기다렸다.


그 느린 시간 동안 나는 쉴 수 있었고,

그 멈춤 안에서 여유롭게 다시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충전했다.


반면 조급함은 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삶을 잠식해 갔다.


이제는 안다.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멈춤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준다는 것을.


조급함은, 아직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아기에게

‘너도 저렇게 뛰어야 해’라고 속삭인다.


조급함은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꽃 봉오리를

만개한 꽃들 사이로 내보낸다.

향기롭고 화려한 꽃과 비교하며,

스스로 움츠러들고 무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우리는 그때를 천천히 기다리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다.

한 번쯤, 천천히 숨을 고르는 용기다.


나는 이제 내 속도를 알았다.

느리지만 나만의 걸음으로 조금씩 걸어갈 것이다.

세상이 빨리 달리라고 채근할 때 나는,

스페인의 좁은 골목길에서 낮잠을 즐기던 사람들,

호주의 바리스타, 중국의 우체국 직원,

필리핀의 느긋한 풍경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번 멈추어, 호흡을 다시 정리한다.

그렇게 오늘도 멈춤의 시간을 지나며

나의 숨을 다시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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