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꼬운 당신, 폭삭 속앗수다.

2025.5.11

by 말하자면


#1 동명이의 죽음


관식과 애순의 막내 동명이는 죽었다. 부모가 한 눈 파는 사이에 파도에 휩쓸려. 엄마는 넋을 잃었다. 새파랗게 변한 아들을 안고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87년, 내 외할머니의 사랑하던 막내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내 외삼촌이기도 한 그는 리비아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에 타고 계셨다. 북한이 테러리스트들을 보내 그 비행기를 폭파했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황망했다. 집안은 늘 울음바다였고, 사춘기였지만 나는 숨죽여 지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두 분 역시 세상을 떠났다. 홧병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집안 식구 모두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가 느껴진다.



#2 이런 뒤통수가 어딨어. 무쇠가 이러는게 어딨어.


이제 동명이의 아빠 관식이 아프다. 류마티스관절염이라 생각했던 무릎 통증은 다발성 골수종의 증상이었다. 수십차례의 항암치료를 견뎌내면서 평생 아플 것 같지 않던 무쇠같은 그가 무너져간다. 그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가고, 걸음걸이는 느려진다. 아마도 그는, 그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다.


2017년 내 아버지가 쓰러졌다. 사실 그는 그 몇 해 전부터 걸음이 느려지고, 숨이 차 오르는 증상이 있었다. 아들은 그가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거라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쓰러진 그는 숨을 쉬지 않았고 얼굴은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변했다.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쓰러진 아버지의 가슴을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지도록 압박하던 아들은 그의 아버지를 찾아온 죽음의 신 하데스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몇 분간의 심폐소생술과 두 차례의 전기충격기 치료로 겨우 숨을 쉬었다. 아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3 Whoever, Whenever, Wherever


누구나, 언제나, 어디에서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상. 오애순의 딸 금영이는 그런 걸 꿈꾼다. 가방끈이 길지 않아도,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육지가 아닌 섬마을 어딘가에 있더라도, 부자가 되고, 시인이 되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세상.


현실은 대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먹고 사느라 바빠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따윈 사라져 버렸고, 세상엔 나 혼자 남아있는 것 같은 때가 훨씬 더 많다. 세상의 풍파를 오롯이 온몸으로 감당하다 보면 소중했던 관계들도 파괴되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나이들어 가는 낯선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래도 믿는다, 금영이처럼.

"Whoever, Whenever, Wherever"



#4 아빠, 걱정하지 마. 겁먹지 마. 나 여깄어. 여기 있을거야.


아빠 관식은 두렵다. 그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영이가 말한다. "아빠, 걱정하지 마. 겁먹지 마. 나 여깄어. 여기 있을거야." 금영이 곁에 있다고 해도 관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생각해 준다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2015년 병원 건물 화재로 대부분의 재산을 다 날리게 되어 황망했을 때, 건물관리인의 모습을 잠시 빌어 나에게 찾아 온 그분이 나에게 말했다. "형제님, 힘드시죠? 욥기를 읽으세요." 그 말씀은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아들아, 걱정하지 마라. 겁먹지도 마라. 내가 여기 있고 앞으로도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말자. 우리 곁엔 사람들이 있고, 우리를 창조해 세상으로 보내신 그 분이 계시고, 누구보다 더 소중한 우리 자신은 올곧이 우리 것이니까, 우린 언제라도 외롭지 않다.


#5 아빠 눈에는 엄마가 보였다. 멋 훗날 여기 혼자 앉아 있을 엄마가 보였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렀다. 원무팀 직원이 애순에게 함부로 대했다. 관식은 원무팀 직원을 가만두지 않았다. 본인들만 아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늙고 아픈 사람들이 이해 못한다고 막 대하면 어떻하느냐고. 본인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아팠던 그였지만, 구석에 앉아 있는 노파를 보며 홀로 남겨질 아내가 세상에서 버려진 후 느끼게 될 고통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상대의 과거와 현재를 알기에, 그 사람의 미래까지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삶에서 생로병사야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걸 다 피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함께. 내가 그 사람의 수호천사가 되어 그가 늘 웃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거다. 본인이 사라지는 것이 매우 명확해지는 순간조차도, 본인은 존재하지 않을 그 시간에 남아 있을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보고 싶은 거다.


#6 우리는 아빠를 영원히 가진 것처럼 굴었다.


이제는 관식이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금영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삶의 에너지가 그들에게 충만하던 시절엔 모르던 것들이었다. 아빠는 나를 영원히 지켜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무쇠같은 그의 얼굴이 흙빛이 되고 그의 건장하던 육신이 재로 돌아갈 시점이 되어서야 삶이라는 것은 유한하고 그들의 관계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금영은 깨닫는다. 삶이 한바퀴 돌고 나니, 그녀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것을. 한 사람은 사라져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을 나눠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 떠난 기억을 가져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가끔은 지지고 볶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쌀쌀맞게 굴었다면 내면의 후폭풍이 더욱 크다. 그래서 다시는 사람들이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애써 믿으려 한다. 그게 사실이 아닌 걸 알고 있을지라도.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거치는 삶의 정거장에서 한 명 한 명 내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처음에 알았던 사람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 정거장에서는 한 명이 내릴 수도 있지만, 아직은 낯선 또 다른 한 명이 타서 함께 여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내린 그 사람에게 배운 것들로 다음 사람들과 더 행복하게 지낼수도 있다는 사실을.



# 아꼬운 당신, 폭삭 속앗수다.


오래도록 만나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함께 성장하고 함께 아픔을 나눈 사람들끼리 사랑을 담아 할 수 있는 말.

"아꼬운 당신, 폭싹 속았수다 (안타까운 당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인연이 시작되었다는 건, 누군가 새로운 정거장에서 같은 차를 탔다는 뜻이다. 우리는 같은 차를 탔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가끔 서로의 눈을 바라볼 것이고, 남들은 모르는 마음 속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듣게 될 것이고, 함께 웃기도 함께 울기도 하는 여정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오래 오래 지난 후에야 그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있겠지만....


그런데 사실, 현재 너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말은,

"Hakuna Mat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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