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꽃이 건네준 시간(30화)

다시 시작되는 시간

by 박영선


꽃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오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꽃 앞에 서 있다.

그동안 수많은 꽃을 만나며 그들이 들려주는 시간에 귀를 기울여왔지만, 마지막 대단원의 마침표는 결국 우리 곁에 가장 흔히 피어 있는 민들레에게 닿았다.


돌이켜보면, 이 연재를 이어오는 동안 참 많은 꽃들을 떠올렸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꽃들이 마음 한편에 남아, 문득 미안한 마음이 스친다.

부르지 못했던 이름을 하나 둘 불러본다....


길가 보도블록 사이, 혹은 메마른 공터 한복판.
민들레는 누가 봐주지 않아도 가장 낮은 곳에서 노란 등불을 켜듯 피어난다.
하지만 내가 오늘 기록하고 싶은 모습은 화려한 노란 꽃잎이 아니다.
꽃이 지고 난 뒤, 스스로 온몸을 하얗게 태워 만든 ‘홀씨’의 시간이다.


꽃이 지면 우리는 그것을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들레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다음 시간을 준비한다. 한때 선명했던 노란빛을 내려놓은 자리에 깃털처럼 가벼운 홀씨들을 둥글게 빚어 올린다. 바람이 한 번만 불어도 금방 흩어질 것 같은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다음 생을 향한 가장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오후, 나는 발치에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가벼운 바람 한 점에 홀씨들은 미련 없이 제 몸을 허공에 던졌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내려앉을지 생각하지 않는 뒷모습.
그저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는 그 모습은 이별이라기보다 차라리 가벼운 소풍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도 이 민들레 홀씨와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손에 꼭 쥐고 싶었던 순간들, 영원히 머물러주길 바랐던 아름다운 꽃 시절도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 홀씨가 되어 흩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흩어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실려 간 그 마음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내려앉아 위로의 싹을 틔우기도 하고,
또 다른 계절의 길목에서 예상치 못한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도 한다.

지난 서른 번의 기록 동안 내가 적어 내려간 글들도 누군가에게 그런 홀씨가 되었기를 바란다.


내 손을 떠난 문장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 어느 지친 마음의 틈새에 조용히 내려앉아
작은 노란 등불 하나 켜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민들레는 꽃을 피우기 위해 치열했고, 홀씨가 되는 순간에는 조용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다시 피어날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이 연재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며, 민들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려 한다.


안녕! 나의 꽃들. 그리고 꽃과 함께 해 준 모든 이들에게.

비록 지금은 바람에 흩어지는 홀씨처럼 헤어지지만, 그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딘가에 내려앉아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다시 피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인사는 끝이 아니라 잠시 흩어지는 시간에 더 가깝다.


꽃이 건네준 시간은 여기서 멈추지만, 당신의 삶에 피어날 꽃들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피어난 꽃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대단원 꽃~1.png



대단원꽃 ~2.png



[AUDIO] 민들레 홀씨되어 - 박미경 | 발매 1988 강변가요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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