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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던 이유

by 게으른루틴

오늘도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열차 안에서,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바쁜 아침, 정신없이 스쳐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또 시작된다는 사실에 잠시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주 사소한 일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무겁게 다가왔다.

내리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루와 마주하는

그 순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회사로 가는 길이 아닌,

내가 가고 싶은 다른 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일,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본다면 어땠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지하철을 계속 타고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삶은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얽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때때로 내 감정을 흔든다.

그저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반복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마치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면,

나는 그만큼 내 삶을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곳에선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속한 자리도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지하철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다.

뜨거운 공기와 함께 현실이 나를 잡아끌었다.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했지만, 그 짧은 순간이라도

도망칠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그 작은 탈출구를 찾은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었다.

내일 또 같은 출근길을 맞이하겠지만,

그때도 다시 한번, 내가 원하는 길을 떠올리며

조금 더 여유를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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