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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도 머릿속은 회사에 있을 때

by 게으른루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사무실 문을 나섰지만, 진짜 퇴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몸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지만,

마음은 회사에 남아 있다.


조금 전에 마무리한 문서에 혹시 실수는 없었는지,

오늘 회의에서 내가 괜히 분위기를 망친 건 아닌지,

팀장님이 했던 지시들은 잘한 건지...

끝없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업무의 조각들.

모니터를 껐지만 내 뇌는 여전히 '작업 중'이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건 가방을 던지고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혹시 긴급한 메시지가 있지는 않았을까."

"오늘 내가 한 말이 단톡방에 어떻게 해석됐을까."

단톡방 알림 하나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답장 하나에 괜히 혼자 마음을 졸인다.

퇴근이 나를 회사로부터 분리시켜주지 못할 때,

그저 집은 또 하나의 연장선 같기만 하다.


사람들은 퇴근하면 마음도 놓으라고,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라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샤워를 하고,

내일 할 일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다.

심지어 꿈에서도 회사에 가 있는 날도 있다.

거기서도 야근을 하고 있더라.


오늘도 그렇게, 나는 아직 퇴근하지 못했다.

퇴근 후의 시간은 여전히

'회사'라는 단어로 점유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 자신에게 작은 위로라도 해주기 위해,

따뜻한 차를 한 잔 타서,

스스로를 안아주는 연습을 해본다.


“오늘도 고생했어. 이제 진짜, 좀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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