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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텅 빈 편의점에서 위로받을 때

by 게으른루틴

퇴근길,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집 방향이 아닌 편의점 쪽으로 향했다.
배가 고파서도, 뭔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나를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작은 곳.

편의점 문을 열면 익숙한 ‘딩동’ 소리와 함께

형광등 불빛이 반긴다.
손님이 없는, 아주 텅 빈 편의점.
바쁘고 시끄러웠던 하루와 대조되는 이 적막함이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진다.

나는 습관처럼 삼각김밥 하나와

따뜻한 컵라면을 집는다.
별 의미 없는 선택인데,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주는 조용한 포상 같다.
계산대에 놓인 간이 탁자에 앉아

라면 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눈을 감는다.

라면이 익는 동안, 내가 했던 실수들, 놓쳤던 말들, 그리고 누군가의 표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그때마다 면발처럼 꼬인

내 마음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뜨거운 국물을 한 입 삼키고 나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온기 덕분에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피어오른다.

편의점은 나에게 일상의 피난처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공간.
비좁고 소박하지만,

하루 중 유일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시간.

밖은 여전히 바쁘고 지치는데,

이곳만은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한다.
오늘도 이곳에서, 나는 나를 다시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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