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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기록을, 기록은 나를

by 구름 위 기록자

유명 가수 아이유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행복할 때는 잘 기록하지 않아요. 일기를 쓴다는 건,

결국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이더라고요.”

그 말에 크게 공감했었다.

나 역시 힘든 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남겨진 기록은 늘 무거웠고,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시절의 피로를 불러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생각을 바꿨다.

힘들었던 순간만이 아니라, 사소한 기쁨과 감사도 함께 기록하기로.


그렇게 2년 전의 일기장을 펼쳤을 때,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기록학자 김익환 교수는 <거인의 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록은 단순하다. 매일의 나를 남기는 일이다.

지금 내가 난장일지라도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우리는 위에서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일기장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기내에서 아이가 건네준 사탕 하나,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옆자리 크루가 어머니가 만든 케이크를 나누어주어 같이 먹었다.”
짧고 단순한 문장들이었지만, 다시 읽자 그 순간의 공기가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날의 웃음이 아직도 글자 사이에서 어제처럼 빛났다.


그리고 그런 기록들은, “모든 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이다.”라는 어두운 하루 끝에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다.”라는 문장을 남기게 했다.

기록이 나를 다시 일으키고, 내일을 믿게 한 것이다.


특히 고단한 비행의 하루도 기록 속에서는 다른 빛을 얻었다.
까맣게 잊었던 감사가 다시 떠오르고, 힘들었던 하루조차 위로로 변해 있었다.


김익환 교수의 말처럼,

하늘 끝에 닿지 못할 것 같았던 순간들도 기록이 쌓이자

조금씩 하늘이 보였고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높이 오르지 않아도, 보이는 하늘을 기뻐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은 켜켜이 나의 삶이라는 작품을 쌓아주고 있었다.


돌아보면, 어릴 적 여름방학마다 억지로 써 내려갔던

일기 숙제는 결국 ‘기록의 힘’을 가르쳐주기 위한 연습이 아니었을까.

귀찮았던 그 시간이 지금은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꼭 일기를 쓰게 하고 싶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어도 좋다.

아주 평범한 하루라도 기록하는 일.

그것이 감성을 키우고 삶을 더 선명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한 자, 한 자로 하루를 깨운다.
평범한 기록이 결국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특별한 힘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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