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고민한 건 ‘글감’이었다.
물론, 비행이야기로 시작하기로는 생각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나만의 색을 더 드러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책상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 일기장.
나는 일기장을 한 권씩 꺼내 읽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별일 없어”라고 대답하던 날들도,
그 안에는 무수한 감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사소한 커피 한 잔, 유난히 세게 불던 바람, 스쳐 간 슬픔까지.
짧은 기록들은 다시 펼쳐볼 때마다 그 순간의 공기를 되살려주었다.
펜촉 끝에서는 늘 또 다른 우주가 열리고 있었다.
17살, 처음 유학길에 올랐을 때도 일기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첫 연애의 설렘, 사춘기의 불안, 직장 생활의 더디던 하루까지.
눈물이 번진 종이도, 달콤한 문장도, 모두 내 시간을 증명해 주었다.
만약 그 기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이렇게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을까.
기록은 내게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기뻤던 날엔 다시 감사할 수 있었고, 슬펐던 날엔 그 시절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더더욱 느꼈다.
일기 쓰기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하는 뿌리라는 것을.
작가 김애리는 <어른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기는 하루에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일이다.
나를 알아갈수록 삶의 두려움은 줄고, 평범한 일상 속 감사가 커진다.”
그 말처럼 나 역시 매일의 기록 속에서 ‘잘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얻었다.
하루하루 쌓이는 작은 실천이 내 삶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It’s all about moments. Moments define life.”
결국 우리의 인생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특히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비행 사이의 기억이 흐려지고 무료함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내게 일기장은 단순한 노트가 아니다.
까맣게 잊힐 순간들을 붙잡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동력이다.
나에게 일기는 단순한 하루의 메모가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나의 삶을 작품처럼 만들어가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