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좀 보려다, 숨 넘어갈 뻔!
어떤 책이든,
책은 단지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세기 악의 한 축이 인간의 ‘무사유’에서 비롯된 대량살상이었다면,
21세기의 악은 어떤 얼굴을 하고 올까.
나는 상상한다.
사유하지 않는 다수의 인간과,
자유의지를 가진 소수의 휴머노이드가 맞부딪치는 미래를.
‘다름’이라는 이유로 ‘정화’라는 이름의 폭력이 정당화되고,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놓고 시작된 논쟁이
결국엔 또 하나의 인종청소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능성을.
그 위험은, 다시 한 번
‘무사유’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
“악은 생각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한나 아렌트,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 사상가.
그녀가 남긴 가장 유명한 개념, ‘악의 평범성’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의 600만 유대인을 강제 이주시켜 학살에 이르게한 독일장교 아돌프아이히만.
패망 직후 피살 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쟁주범들과 달리 실무책임자였던 그는 타국으로 도망가 위장신분으로 삶을 이어간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15년 만에 붙잡혀 납치되기 전까지. 그리하여 1961년 예루살렘 법정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재판에 그를 세우는데, 잡지사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에 참여한 아렌트는 그때 작성한 보고서 형식의 기사문을 2년 후 책으로 출간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의 명성에 걸맞게 나는 기대했고,
조금 늦은 독서가 아쉬울 만큼 몰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문장이었다.
1. 번역이, 문제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의심했다.
- 내가 난독증인가?
- 아니면 번역이 엉망인가?
곧 확신했다.
문장이 산만했다.
주술이 엇나가고, 숨 막히는 길이에, 애매한 호응과 부정확한 어휘는 독자를 끝없이 미로로 몰아넣었다.
역자는 “쉽게 읽히는 대중서”라 소개했지만
실상은 철학적 난해함 때문이 아닌,
기본기 없는 문장의 혼란이 독서를 방해했다.
글은 달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손끝의 먼지만 자꾸 들이댔다.
2. 그럼에도, 달은 거기 있었다
힘겹게 문장을 헤치며
나는 아렌트가 말하려 한 바를 붙잡기 시작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왜 ‘악의 평범성’인가
아렌트는 재판장에서 아이히만의 말과 태도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그는 잔혹한 살인자가 아니라,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한
‘평범하고 무능한 관료’처럼 보였다.
그는 죄의식도, 악의도 없었다.
오히려 “명령을 어겼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말했다.
그가 한 일은 단지,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보내는 과정을 치밀하게 관리한 것”뿐.
아렌트는 그가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였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은 상투적 표현으로 가득했고,
타인의 존재를 사유하지 못했다.
‘말하는 무능력’은 곧 ‘생각하는 무능력’으로 이어지며,
그 무능이 바로 악의 뿌리라는 통찰로 나아간다.
악은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서 비롯될 수 있다.
둘째, 왜 ‘법과 정의’인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또 하나의 혼란은
아렌트의 ‘냉정함’이었다.
피고를 응시하는 시선이 차갑고도 중립적이다.
심지어 무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후반부에서 그 이유가 드러난다.
그녀는 ‘양심’이나 ‘감정’이 아닌,
이성적 판단과 공정한 법의 원칙을 지키려 했다.
-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재판에 서게 된 것,
- 그 재판이 국제적 범죄를 민족적 범죄로 국한시킨 것,
- 그로 인해 인류에 대한 범죄의 정의가 좁아진 것.
이 모든 문제의식을 통해
아렌트는 말한다.
이 사건은 국제재판소에서 다뤄졌어야 했다고.
정의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선례로 작동해야 한다고.
“악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간.”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는 괴물이 아니었고, 단지 말할 능력이 없었으며, 그로 인해 생각하지도 못했다.”
— 아렌트의 재판 보고서에서
3. 결론: 이 책은 읽어야 한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시대의 윤리와 사유의 기준을 묻는 책이다.
아이히만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어 독자에겐 쉽지 않다.
문장을 읽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인내는 상당하다.
번역자는 ‘쉽게 읽힌다’ 말했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내 입장에선
그 말 자체가 책의 가장 큰 허위다.
나는 기대했다.
아렌트의 통찰에 감동하고 싶었고,
진실을 가리키는 문장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달은 가려졌고,
나는 문장 속에서 지쳐버렸다.
더 나은 번역본이 반드시 필요하다.
책은 훌륭하다. 다만,
그 가치를 누리기 위해선
제대로 된 언어가 필요하다.
덧붙임
이 책은 문장의 교훈서로도 쓰일 수 있다.
ㅡ ‘이렇게 쓰면 독자가 어떻게 고통받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이자 반면교사.
혹은 불면증 환자에게 주는 수면제.
내가 직접 열흘 간 실험했다.
효과는 확실하다.
에필로그: ‘달’을 보기 위한 인내
이 책은 독자의 인내를 시험한다.
불편하고, 피곤하고, 때로는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건져야 할 메시지는 단 하나—
“생각하지 않는 자가 악을 반복한다.”
나는 이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악은 특별한 얼굴을 한 채 오지 않는다.
지시를 따르고, 책임을 미루며,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우리 안의 평범함 속에서 자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읽기 어려운 책이지만,
읽고 나면 쉬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지금 이 사회에, 지금 나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평범한’ 인간에게
필요한 한 권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익숙한 답을 반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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