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도 열량이 필요해

평생 해야 하는 진로고민

by 수기

요즘의 내 고민은 한 가지로 모여진다.

'그래서 뭘 해야 하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탓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자신감의 문제인지 자존감의 문제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문제를 안고 밤이 되면 눈을 감는다.


요즘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고요한 집 안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긍정적인 생각이던지 부정적인 생각이던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기분이 들어 백색 소음을 틀어놓고 잠을 청한 것은 내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한동안은 과학 채널을 틀어놓고 잤는데 요즘은 과학 이론에 대한 설명마저도 생각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어 아예 빗소리로 바꿨다.


워낙 일을 하지 않고 백수로 쉰 기간이 오래되어 당장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적은 돈이 될지라도 내가 영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일종의 확인인 것 같다.


얼마 전 본가에서 며칠 다니러 온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지금 당장은 엄마의 재정적 도움으로 지낸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데,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게 답답한 것 같아.'

잠시 고민하던 엄마는 말했다.

'지금 당장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알바 정도의 수입이 가능한 것들을 천천히 한 번 고민해 보는 게 어때?'


그래서 두 여자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결론은 세상엔 쉬운 게 없다는 것이었다.

내 걱정은 이러다 영영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었고, 엄마의 걱정은 쟤가 저런 걱정만 하다가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었다.


십 년을 이어왔던 내 직업을 계속할 수는 있을까. 그게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는 날들이 근래 많이 늘어난 나에게 친한 언니가 제대로 먹는 것도 없이 누워있으니 더 무기력해지는 거라고, 뭐라도 챙겨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에너지 쓰일 일이 뭐가 있냐고 반문하자 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모든 고민들이 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들인데 네가 뭐 하는 일이 없냐고 했다. 생각조차도 다 열량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끼니를 잘 챙기지 않으면 몸은 또 생각이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 남은 에너지를 갉아먹게 된다고 했다. 집밥을 챙겨 먹던지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배달이라도 시켜서 먹으라고, 영양을 따지며 골고루 챙겨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힘들면 뭐라도 먹으라고 했다.


계속 뭘 해 먹고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행위가 내 열량을 태우는 행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먹고살 걱정을 하기 위해 먹어야 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문장 같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생 때 알바라도 다양하게 해 볼 걸, 그런 후회도 조금 들었다. 내게 사회생활은 정말 딱 내가 10년간 직업으로 삼았던 일뿐이었기 때문에.

다들 뭘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우적우적 먹었다.

세상에나, 너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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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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