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과 노력은 매우 가깝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친하게 지내던 옆 부서 동료분께 편지를 받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지만, 저는 그곳이 낙원이 아니어도 괜찮았어요. 수기님을 항상 응원해요.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니까 각색이 들어갔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문장을 계속해서 읽었다. 다정하고도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받는 기분을 느꼈기에.
나는 내가 죽을 것만 같아 견디지 못하고 이곳을 도망친다고 생각하며 이 정도 사회생활도 견디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가 있었다.
사실 주변만 둘러봐도 사는 게 녹록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편지에서는 망가진 나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도망치려는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니, 그러니까 괜찮아.
사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위로의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동료가 꾹꾹 눌러 담은 진심에는 원작의 의미와는 반대의 의미로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 땐 잠깐 쉬어가도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 같다.
'이 정도로 힘들어서 못 견디면 어떻게 살래. 남들도 다 힘들게 사는데 이렇게 멘탈이 약해서 어떻게 해. 정신 차려야지.' 그런 생각이 나를 좀먹고 고통스럽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도 같다.
나 정말 힘들었던 것 맞고, 지금도 흐르기 직전의 꽉 찬 물 잔처럼 아슬아슬한 불안이 매일같이 마음속에서 일렁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제법 괜찮은 삶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자기혐오도 아마 많이 나아졌을 것이다. 예전처럼 우스갯소리로도 나 자신을 비하하는 말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전에 엄마와 실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장난처럼 '내가 쓰레기네!' 하는 식의 말을 했는데, 엄마는 단번에 인상을 썼다.
왜 자꾸 너 자신을 깎아먹는 말을 하냐고 나무랐다. 민망했다. 엄마, 그게 내 병인 걸 어떻게 해. 엄마는 알지만 그런 별 것도 아닌 말에 너 자신을 깎아먹는 습관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도망 얘기를 하다가 노력 얘기가 나와서 대체 두 단어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느냐 묻는다면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노라"라고 말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내 마음을 붙들고 사방팔방으로 도망친다.
비록 안간힘을 써서 뛰어간 곳이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란 낙원은 아닐지라도.
조금 덜 불안하고, 조금 덜 불행하다 느낀다면.
내가 제법 그럴싸한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면.
그리고 가끔 소소한 행복도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은 꽤 괜찮은 곳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