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떠안고 있는 수많은 고민과 불안들이 혹시나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자기 연민처럼 보이진 않을까.
그렇게 또 남들의 시선과 생각을 생각하는 것마저 나에겐 고민으로 이어지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부단하게 생각하려는 노력 또한 방향성이 잘못된 자기 합리화는 아닌가 생각하게 되고,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또 불안해지고, 그 굴레에 빠져 나는 무한정으로 허우적대는 것이다.
몇 달 전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에게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을 잔뜩 메꾼 '초민감자(HSP)'에 대해 여쭸다. 혹시 내가 그런 사람에 속한 사람은 아닐까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말을 곁들였다.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의사 선생님은, 여러 가지 검사들을 진행해 그 결과를 지표 삼아야겠지만 수기님이 남들보다 조금 더 센서티브 한 건 맞다고 하셨다. 아마 내가 유난히 남들의 감정을 신경 쓰고, 그 감정으로 불안하고 예민하게 구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겠구나,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삼 년 가까이 나와 라포를 쌓고 계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많은 말씀을 해주시진 않는다. 예전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으나 지금은 의사 선생님의 적당한 침묵과 미소 띤 응원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아서.
마지막으로 글을 발행했던 날보다 나는 조금 더 나아졌다. 매일 먹는 약 중에 유일하게 우울증을 위해 처방된 약이 한 알 있는데, 요 근래 두어 달 가까이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도 감정 기복이 덜 한 상태로 잘 지내고 있다.
느리지만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내게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불안'이었다.
누군가가 어떤 영상에서 그런 말을 했다.
내 탓인가 자책을 할 시간에 최대한 남 탓을 하라고. 법의 영역에 걸리지 않고, 사회적인 도덕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남 탓을 하라고. 그 말이 이상하게 목구멍에 콱 막혀서 한동안 뱉어내지지 않았다. 나 자신을 위해 남 탓을 하라니, 헛웃음이 나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다.
저장함에 꽤 오래 담겨있던 이 글을 보고, 세상에 꺼내놔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정말 어이없게도 '주식'이었다.
쉬고 있는 기간 동안 간식 값이라도 소소하게 벌어볼까 싶어서 한 달 하고도 보름동안 백만 원이 넘는 순 수익을 냈는데, 감정매매로 들이댔던 종목이 순식간에 한 달 보름간 쌓았던 수익금을 깡그리 녹여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처음엔 화가 났다. 그 후엔 원금마저 건드리지는 않았다는 사실로 안도했다. 어차피 두어 달 공들이면 다시 원복 할 수 있는 범위의 수익금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계획을 잠시 머릿속으로 정리했고,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내 수익금을 열심히 녹여낸 세력들을 오늘 밤이 지나갈 때까지 탓하면서 나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며 쫀득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겠지.
(투자는 적당히, 신중히 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주식으로 수익 낸 돈을 한 순간에 녹여버리는 날도 있는 거지.(물론 화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또한 자기 연민이 장난 아닌 사람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상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떻게 하면 기분 전환이 될까, 좀 더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방향으로 살아야지 다짐했다.
물론 평생 날 잡아먹던 생각하는 습관을 돌려놓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이 글을 다시 꺼내본 오늘은, 전보다 조금 더 괜찮아진 내가 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