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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별후애2 05화

취향의 관통보다는

결의 관통

by 유은


스몰토크에서 빠질 수 없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MBTI만큼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 이상형.


모태솔로로 지낸 기간이 길었던 탓에, 한때는 나도 취향에 엄격한 이상형이 있었다. 영화나 음악에 깊이 빠져 있던 20대 초반, 나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명확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동경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고유한 세계가 특별함으로 다가온다면, 나는 분명 그에게 사랑에 빠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형을 품고 있던 시절에도,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연애를 경험하고 나서야, 나에게 그런 이상형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특별함은 이제 내게 중요한 매력이 아니다. 막상 정말 분명한 사람을 마주한다면, 오히려 뒷걸음질을 칠지도 모른다.


취향은 더 이상 그 사람을 알고 싶게 만드는 핵심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건 서로의 행동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사람이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가볍게 덮을 수 있는 사람. 고유의 결이 비슷한 사람. 외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취향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그런 건 더 이상 한 사람의 고유함을 완성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나는 이제, 억지로 맞추려는 힘든 노력보다는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되도록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랄 맞아도, 눈 감았다 뜨면 또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부분들이 더 크게 보이는 관계. 그게 진짜 순애 아닐까. 서로에게 의문이 없는게 분명한 것.


살을 뜯는 고통 같은 노력 없이도, 그 관계가 충분히 오래 지속될 수 있는, our relationship is strong enough to go the d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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