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결한 바닥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바닥이, 너에게는 최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바닥이 서로에게만큼은 최악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어차피 살아가며 나의 바닥을 마주하고 좌절해야 할 순간은 앞으로도 수없이 남아 있을 텐데, 굳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까지 최악을 증명해야 할까. 적어도 너의 옆에서는 더는 스스로를 증오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괴롭히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너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그것만으로 떠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남겨진 사람의 몰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차가울 테니까. 서로의 혐오가 혐오로 남지 않고, 무심히 흘러가면 좋겠다. 내게 가장 어려운 게 너에겐 가장 쉬운 것이길.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결핍을 애써 닦아주거나 조심히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건 약함이 아니라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결한 존재가 된다.
서로의 바닥조차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관계. 그것은 신경 써서 안아주는 따뜻함보다 훨씬 더 뜨거운 힘일 것이다. 그만큼 소중하고 찾기 어렵겠지만, 서로에게 그렇게 되는 자연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은 엄청난 힘이자 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