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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별후애2 07화

그들의 방식이 그리 나빴던 건

절대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남잖어

by 유은


사귀던 순간만큼은 서로의 자랑이었기에, 둘 중 누군가는 ‘그것도 사랑이었지’ 하고 좋게 묻어버리며 살아가겠지. 몸이든 마음이든 앞서가기 바빴던 그들의 방식이 그리 나빴던 건 절대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남잖어. 좀 더 천천히, 여유가 있었더라면 각자에게 무심하게 끝내진 않았을 텐데. 자기 욕심보다 애정이 더 컸을 텐데.


너무나 명확하게 누굴 좋아하면 식욕이 떨어졌다. 그를 만나기 전, 남자를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언가를 진심으로 먹은 적이 없다. 불편했다. 마치 10대 소녀가 좋아하는 선배 앞에서 햄버거를 부끄러워 먹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음식이 중요했던 내가, 누굴 좋아하면 살이 빠졌다.


늘 사랑을 시작할 때의 몸무게가 있었는데, 그게 지금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 중에는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같이 먹는 식사가 즐거웠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편해졌다. 외모에 집착하던 내가 어느 순간 나를 조금 놓게 되었다. 물론 드레스업 할 때의 강박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몸무게를 찍었고, 헤어지자마자 살이 다시 빠졌다. 1년 반의 무게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육안으로 크게 티 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살이 빠진 건 알아보는 정도였다. 머리 매직을 꼭 했던 내가, 같이 자는 일상이 늘어나면서 잠에서 깬 머리가 말도 안 되어도 매직을 하지 않았다. 드레스업 할 때면 충분했으니, 고데기면 됐었던거다.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았고, 귀여움 받는 기분이 좋았다. 외적인 것이 중요 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 행복했던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는 다시 매직을 하고 하얀 피부가 부자연스러울 만큼 극대화되는 흑발로 돌아갔다. 살도 빠지고, 화장법도 바뀌었다. 그가 늘 걱정하던 렌즈도 완전히 끊었다. 10대 때부터 끼던 렌즈였는데, 이제는 중요한 날에도 끼지 않는다. 그와의 시간은 내게 과도기였다. 그가 가끔 불만을 표하던 내 짧은 옷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입었나 싶다.


그리고 왜 그렇게 그와 함께 먹는 것에 대해 집착했을까. 불과 몇 달 전인데,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달라질 수가 있나. 요즘은 책방에 가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고요를 즐기다 보면 불쑥 그가 떠오른다. 모난 그리움은 아니고, 그냥 ‘이런 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 그는 늘 “굳이 최고를 찾지 않아도 된다, 내려놔라, 술이랑 음식 말고 다른 것을 위주로 해보자”라고 했는데, 왜 그때는 내려놓지 못했을까. 결국 한 끼일 뿐인데. 효율을 찾고, 칭찬을 받고 싶었던, 강아지 같이 사랑받고 싶은 초조한 마음.


요즘의 나는 그가 좋아하던 모습대로, 꽤나 깔끔한 여자로 보인다. 가끔 거울 속 내가 마음에 들 때 그의 생각이 나고, 정말 마음에 드는 식당에 가면 앞에 있는 사람 대신 그가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호들갑 떨며 30분은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말이 상상되는 순간 알 수 없이 웃음이 난다. 나는 그의 칭찬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우리는 그럴 때만 잠깐 좋았다. 그런데 그 잠깐이, 마치 인생의 소울메이트처럼 서로의 판박이처럼 딱 맞는 순간으로 반복됐으니, 그래서 마음이 뜯겨 나가는 고통을 참을 만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많이 예쁘다, 오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끔 꿈에서 우리가 카페에 앉아, 지난 모습이 아닌 서로가 몰랐던 얼굴로 평온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우리 옆엔 안정적인 상대나 안정적인 자신이 있으면 좋겠다. 불안정하기만 했던 서로가 아니라.


나는 우리의 말도 안 되는 끝 때문에, 모든 기억이 더럽혀지는 걸 막고 싶어서 그렇게 혼자 발버둥 쳤던 것 같다. 너는 그것조차 지쳐 나를 떠났지만, 조금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내 기억이 가장 중요한 나인 건 여전히 변함없지만, 그래도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그럴 수 있지’라며 웃는 네 모습, 우리의 사이에서 아무 상처도 남지 않았던 딱 그 정도의 반응만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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