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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별후애2 04화

헤어지길 정말 잘했다.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다니.

by 유은


모든 것은 행위가 아닌 이해의 문제라는 것 - 이석원 , 순간을 믿어요.


감격. 헤어진 지 네 달이 조금 지나니, 진심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와. 나 꽤 행복하구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졌다. 억지로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과 시간을 억지로 나누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친구가 있으니까. 사랑이 없어도, 그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 그래서 굳이 둘만의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삶이라니. 이러다 혼자가 익숙해질까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뭐. 아직은 괜찮다.


찰나처럼 스쳐 가는 생각을 더 깊게 따라가 복기하지는 않는다. 차단이 제법 잘 되는 요즘이다. 잃었던 식욕도 조금씩 돌아와 입맛이 돈다. 그래도 조절한다. 예전엔 네 곁에서 느끼던 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를 너에게서 채우지 못해 음식을 찾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도 다짐한다. 앞으로의 연애는 반드시 분명한 선이 있을 거라고.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랑은 처음이자, 완벽한 끝이다.


네가 내가 찍어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사진을 고른 네 마음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나도 요즘은 꽤 잘 풀리고 있으니까.


너와 헤어진 후,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을 외로움에 기대어 만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관계도 오래전에 끝났다. 이후 완전한 일상을 되찾았다. 더 이상 너와의 이별에서 비롯된 나의 유약함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진지하게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도 서서히 생기고 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의미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내 시간을 지키면서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제 웬만하면 집에 혼자 있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네 옆에 있었다면 나는 정말 불행했을 것이다. 네 세상은 좁았다. 나는 그 안을 거의 다 탐구했고, 끝까지 머무르려 애썼다. 하지만 거기에 평생 갇혀 있었다면―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정말 우리는 헤어지길 잘했다. 고맙다. 나는 네 말대로, 훨씬 더 큰 세상에 어울린다. 사실, 너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늘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었지만, 결국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이다. 너는 그 사실을 나보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고, 나는 네가 내 곁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 인정하고 진짜 보내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 인생 전체에서 2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정말 다른 어떤 경험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앞으로의 내 삶 전체를 바꿔놓을 거다. 그것도 너무 적절한 시기에, 정말 소중한 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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