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이별후애2 03화

가장 좋아하는 단어

'모순'

by 유은
이건 모순이 아닙니다.


3년 전, 누군가 내게 책 한 권을 추천해 줬다. 양귀자의 모순.


그때는 아직 역주행의 바람이 불기 전이었다. 지금처럼 누구나 제목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해지기 전, 그 과도기의 시점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나는 원래 스테디셀러를 잘 읽지 않는다. 모두가 좋다고 하면, 괜히 한 발 물러서고 싶어지는 반골 같은 기질이 있어서다. 그런데 모순은 달랐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 잡은 생각들을, 작가가 먼저 꺼내어 언어로 풀어놓은 듯했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라는 사실. 그러나 그 선택이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기질과 운, 타고난 성향이 삶을 더 크게 지배한다는 것. 모순은 그 단순하지만 뼈아픈 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이기도 했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드는 성격도 아니고, 오히려 부담스러운 건 질색이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산 것도 아니다. 다만 늘 그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나른한 면이 있어,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면 쉽게 무너진다. 결국 인생은 끝없는 양자택일 속에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감당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쌓인 선택들이 나의 색깔을 넘어, 나라는 존재 자체를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 안진진의 최종 선택이 오래 남았다. 김장우를 향한 사랑이 깊었다면, 그녀는 다른 모순을 생각하지 않고 평생의 불행을 감수하면서도 그 사랑을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것조차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랑했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선택했다. 끝은 알 수 없지만, 우선 이해를 향한 시작을 택했다.


내 삶에도 비슷한 갈림길이 있었다. ‘사랑을 끝까지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지킬 것인가.’

나는 결국 사랑을 붙잡는 쪽을 택했다. 그가 없을 때의 내가 더 오래 아프고 힘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를 붙잡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전 삶에서 쌓인 수많은 선택 덕분이었을 것이다. 옆에 있는 것이 불행할지라도, 그 불행조차 감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나를 놓는 것이 그에게는 모순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 속 진진의 고민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내가 이미 내 방식의 모순을 겪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언제나 앞뒤가 맞지 않는 선택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얼굴을 완성한다. 모순을 부정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게 남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한 진리였다. 살아가는 동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얽히고설켜 자아를 만든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알고 보면 같이 있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는 걸 끝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처럼. 선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두려워 아무 결정을 하지 않고, 나중에 그 과정을 후회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큰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회피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다.


“실감하기 어려워. 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걸 몰랐던 나는 혼자 너무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

keyword
이전 02화크기의 비교가 멈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