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시간, 필사의 매력

펜과 종이만 있다면 어디서든

by 별방구

좋아하는 소설 속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홀로 필사하다 보면 눈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방식의 독서를 만나게 된다. 작은 전자기기 속 타자기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며 기록하는 방식이 더 친숙해져 가는 요즘, 직접 펜과 종이를 잡고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낯설어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 겨울 무렵, 나는 중학생 때부터 종종 홀로 해오던 필사에 다시금 빠져들게 되었다. 중학생 때는 좋아하는 노래 가사나 시 구절 같은 것들을 짧게 노트에 끄적이곤 했다.


제대로 된 필사를 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학교에서 문학 관련 방과 후 강의를 듣던 날이었다. 아마도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 같은 주제였던 기억이 난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때 소설가로 활동 중인 강사 선생님께서 우리들 중에 필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번쩍 손을 들고 싶은 마음과 달리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당시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을 품은 채로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며, 좋아하는 소설을 일단 따라 써보자는 마음으로 막 필사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날 내가 필사를 하던 소설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었다. 여전히 좋아하는 작가님의 좋아하는 소설인데, 그 시기 내 기준에 가장 훌륭하고 좋은 소설을 쓰는 분이 바로 김애란 작가님이었기에 선택한 책이었다.


마음속 두근거림을 뒤로하고 수줍게 손을 들자, 어떤 책을 필사하냐고 물어보시곤 내 대답을 차분히 들어주셨다. 소설을 필사하는 것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훈련이 된다고, 열심히 잘해보라고 격려의 말씀도 덧붙여주셨다.


그러나 소설책 한 권을 필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되고 긴 마라톤이었다. 읽는 것과 달리 쓰는 것은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는데, 무엇보다 내 손목과 손가락이 버티질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단편소설 하나씩을 마스터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나름대로,, 스스로를 위로해보곤 한다.


그 시기가 지나고 한동안은 필사는커녕 펜을 쥐는 일 자체가 거의 없어졌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저히 사용량이 줄어든 연필을 오랜만에 일기를 쓰려고 쥐면 10분도 채 안 돼서 손목과 손가락이 아파왔다.


연필을 쥐고 쓰던 근육들이 무심했던 시간 사이로 다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이때가 아마도 대학교 1학년 때쯤, 그러니까 아날로그 펜과 멀어진 지 불과 1년쯤 되었을 때였다. 나름대로 필기와 손글씨에 자부심이 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흘러간 1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나의 손가락은 이렇게도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미세한 근육통 같은 것들이 몰려오는 찰나에 나는 이대론 안 되겠단 생각을 하며, 매일 조금씩 무엇이든 쓰자고 다짐했다. 보통은 일기였지만, 때로는 소설 필사가 되기도, 또 때로는 편지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필사에 빠져든 것은 책방지기가 된 이후였다. 조금 여유롭게 하루의 일과에 독서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행복한 삶을 살던 나날들이었다. 매일 책과 함께하다 보니 독서를 한층 더 깊이 유영하고자 자연스레 필사를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바쁘고 정신없는 요즘, 누군가에는 잠시 책상에 앉아 노트 위에 좋아하는 글을 손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꽤나 사치적인 일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내게 필사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도파민이 가득한 콘텐츠를 보는 것보다 일종의 준비 에너지가 훨씬 많이 필요한 일이다. 때로는 한 페이지를 끝마치기도 전에 온라인 세상의 유혹이 나를 중도 멈춤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혼란의 세계에서 벗어나 차분히 사각사각 쓰다 보면 어지러운 것들은 뒤로한 채 작은 종이 섬에 당도하게 된다. 그 섬엔 오직 글자들만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하다. 그 충분함을 느낄 때쯤 나는 한결 가볍고 맑아지기에 오늘도 펜을 손에 쥐고, 어떤 구절을 쓸지 고민하는 작은 행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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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