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모임에 대하여

쓰는 시간을 넘어 함께 나누는 시간

by 별방구

책방지기가 된 초창기에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는 독서모임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책방지기가 되기 전까지는 책을 읽는 시간과 그 여운을 홀로 느끼고 음미하는 것을 좋아해서 독서와 관련된 모임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별방구를 통해 사람들과 책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오고 가는 긍정 에너지를 직접 느끼면서 점차 그 매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처음 책방을 시작했을 땐 4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라 이곳에 모여 뭔가를 나누거나 시간을 보내기엔 어려움이 있을 거란 우려가 컸다. 그래서 언젠가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는 작은 꿈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은 채로 미래를 지향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갔다. 빠르게 시간은 흘러 2년이 되어갈 때쯤 홀로 필사를 하다가 이걸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어떨까 하는 작은 설렘이 담긴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필사를 하고 나누는 모임.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시간에 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온라인 필사모임이 떠오른 것이다. 물리적으로 모여서 나누는 게 어렵다면 넓고 넓은 온라인 세상을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자신이 있는 그곳 어디든, 노트와 펜만 있다면 할 수 있는 필사이기에 꼭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필사모임을 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곧장 모집 공고를 만들었다. 모임 일정과 약간의 규칙, 설명을 작성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홍보할 수 있는 한 페이지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정말 같이 해줄까? 하는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의 모집을 시작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필사를 좋아하는 소수의 인원이 모여 별방구의 첫 필사모임은 시작되었다. 필사모임의 진행 방식은 매우 간결했다. 30일 동안 매일 지정 시집 속 시 한 편을 종이에 필사 후 단톡방에 사진으로 인증하면 완료. 지정 시집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류시화 시인의 ‘그때 알고 있던 걸 지금도 알았더라면’으로 선정했다.


오프라인의 대면 없이 단톡방에서 처음 만나게 된 모임원들은 각자의 소개를 통해 자신을 알렸다. 생각보다 실제의 친분 없이 온라인 모임을 통해 만나 소통을 이어간다는 건 꽤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임장인 내가 리더로서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필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인데 부담을 주진 않을까 하는 고민 섞인 망설임이 계속 나를 어렵게 만들었다.


어떤 온라인 모임 혹은 커뮤니티는 굉장히 사적인 대화도 많이 하고, 모임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를 통해 친밀감을 향상하기도 한다는데 소심한 나는 괜히 부담을 줄 것 같단 생각에 사적인 대화는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덕에 필사모임 채팅방은 굉장히 심플하고 조용했다. 정말 각자 매일 원하는 시간에 필사를 하고, 자신의 필사를 공유하며 나누는 모임 그 자체에 충실했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땐 뭔가 내가 분위기를 좀 더 친밀하게 할 수 있는 대화 혹은 말을 유도해야 하나 고민도 잠시 했지만, 끝내 어떤 친목을 위한 말은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조용하고 잔잔하게 흐른 필사모임의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묵묵히 필사를 하고, 홀로 음미하는 시간을 넘어 전해지는 그 조용한 친밀함이 좋았다. 필사한 시 아래 짤막하게 적어둔 각자의 생각을 읽어보며, 내가 미처 생각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시선을 만나게 됐을 땐 알 수 없는 전율이 내 안에 퍼지기도 했다. 같은 시집이지만, 서로 다른 페이지에 멈춰서 필사를 하고 30일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건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누군가 다른 어느 곳에서 나처럼 필사를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은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됐다. 혼자 고독을 느끼듯 말없이 쓰던 시간이 여전히 혼자지만, 같은 파도 위에 각자의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또한 필체는 사람의 말투와 목소리만큼 다양하고, 그 사람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얼굴을 모른 채로 그 사람의 손글씨를 보다 보니 어느새 그와 어울리는 이미지로 그 사람을 그려보게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30일이 지났다. 필사모임은 마무리가 되었고, 내게는 30 페이지의 필사가 남겨졌다. 생각보다 매일 일정하게 필사를 한다는 건 그냥 마음이 움직일 때 자유롭게 하던 필사와는 무게가 조금 달랐다. 그 무게가 마냥 무겁기만 하지 않고, 어느 날엔 나를 밀어주고 또 어느 날엔 기대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때론 적당한 무게감이 삶에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공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첫 필사모임이었다. 처음이라 서툴렀을 시간을 함께해 준 첫 필사모임 부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언젠가 다시 필사모임을 하게 된다면 그땐 좀 더 이 마음을 주저 없이 전하고 싶다.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책방지기의 한걸음, 두 걸음을 위해 오늘도 마음을 활짝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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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