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러버의 변덕스러움
나는 옷을 너무 사랑해
취향과 스타일은 바꾸려 해도 쉽사리 바꿔지지 않는 하나의 습관과도 같다.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냄새,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날씨. 그중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옷’이다.
나는 매일 다른 옷을 입으며, 부담스럽지 않은 ‘멋쟁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다음날 무슨 옷을 입을지가 자기 전 떠올리는 생각더미 중 하나일 정도로 옷에 진심이다. 그런 내가 매일 아침, 외출하기 전 옷장 앞에 서서 하는 고민이 있다.
바로 스타일이냐 vs 편안함이냐
스타일을 선택한다면 츄리닝 대신 밴딩이 없는 청바지를 집을 것이다. 그러나 입고 있으면 점점 세상이 날 짓누르는 듯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청바지다. 입기 전부터 예견되는 불편함으로 인해 너무나도 미래확신적인 생각을 하며 쉽사리 입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의 몸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 줄 츄리닝을 선택할 것인가. 그럼 오늘도 후줄근한 젊은이 1이 되어버릴 텐데. 걸어가다 비친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그래서 대부분의 날에 택하는 것이 편안함과 적당한 스타일을 모두 겸비한 대안, 나일론 카고 팬츠다.
마치 갑옷을 입은 듯 나의 숨통을 조여온다..
나는 유달리 배를 쪼이고, 피부를 답답하게 하는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적당한 불편함은 사람을 더욱 단정해 보이게 하는 법. 그 적당한 불편함조차 견디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서 편하게 청바지를 입기 위해 뱃살 타파와 늘 씨름 중이다.
오늘만은 멋쟁이가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몸을 향해 존재감을 마구 선사하는 옷을 입은 날이었다. 오후가 되고, 몸에 피로가 쌓이자, 도무지 몸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겠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이 옷들을 모두 집어던지고 몸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지친 몸을 뒤로 하며, 주변을 살펴본 결과.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 20%
회사원처럼 단정한 정장복을 입은 사람 40%
몸을 쪼여보이는 청바지와 티를 입은 사람 30%
고프코어룩을 선사하는 어르신 분들 10%
그러니까 저 편안해 보이는 옷을 입은 20%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도대체 이 불편함을 어찌 참고 살아가는 것일까. 내 안에 거대하게 의문으로 가득 찬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리곤 다들 참는 것이겠지라는 허무한 생각과 함께 멋쟁이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편한 옷을 입으면서도 멋쟁이가 될 수 있는 패션 다양화의 시대 속에서 이런 나의 생각은 너무 획일화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 20여 년의 인생을 편안함 속에서 멋을 살린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편한 멋쟁이는 한계가 있음을. 그래서 이젠 불편함도 섞어서 여러모로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멋쟁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집어던지다시피 벗어던지며, 당분간 앞으로는 절대 이런 쪼매는 옷 안 입겠다는 다짐과 함께 날 평온으로 이끌어주는 잠옷을 입고 역시 이게 행복이고, 여유지 생각하며 벌러덩 누워버렸다.
오늘도 멋쟁이고, 편안함이고 하는 고민을 뒤로하며 나는 생각한다.
저울의 추는 과연 어디로 기울 것인가
옷뿐만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늘 선택의 연속이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나의 결단과 결심을 기다린다. 내가 선택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양날의 검처럼 느껴지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나는 늘 고민하고 주저한다. 일단 선택했으면 받아들일 것. 멋지지만 불편하든, 편하지만 안 멋지든 내가 선택했으니 cool~하게 인정하기. 그리고 불평하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가기. 그 단순한 게 왜 이리도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인지. 좀 더 최선의 좀 더 좋은 선택이 좋은 하루를 만들기에, 좋은 나를 만들기에 하는 고민들. 그러나 이렇게까지 옷에 대해 몰입하는 것이 때론 오바쌈바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음을 상기하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