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하는 사람

그러나 그런 나도 땀은 흐른다.

by 별방구

여름을 좋아하는 나

개인적으로 나는 추위보다 더위에 더 강한 편이라 겨울보단 여름을 훨씬 좋아한다. 겨울 산책은 온 얼굴과 발이 꽁꽁 얼어붙어 완전히 걸을 수가 없게 되는 반면, 여름엔 그래도 비교적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고온 주의보가 발생하고, 여름철 열대야 무더위가 시작되면 몇 걸음 안가 금방 흐르는 땀방울과 꿉꿉함에 산책을 하고 싶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서둘러 전력이 가동되는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는 탓에 걷기는커녕 거리의 고온다습한 공기조차 견디기 싫어지는 게 일순간이다.


이제는 정말 5분만 걸어도 땀이 주룩 흐르는 날씨가 찾아왔다. 집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아 역시 여름에 요리는 무리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열대야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는다. 더위, 네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래 네가 이겼다. 금방 외쳐버리게 만드는 여름은 정말 강하다.

얼음물보다 짜릿한 샤워의 맛

겨울엔 샤워가 참 싫은데, 여름 샤워는 그야말로 카페인이 가득한 커피를 몇 잔이고 계속 마시고픈,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이끌림처럼 느껴진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나오면 시원해지는 순간,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해지는 그 쾌적함이 참 좋다. 오직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샤워의 참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순간의 상쾌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머리를 채 말리기도 전에 다시 더위가 찾아오기도 하고, 새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있으면 드라마 한 편을 다 보기도 전에 샤워는 어제나 했던가 싶게 다시금 더위가 나를 둘러싼다. 그야말로 쥐려 해도 쥘 수 없는 여름의 시원함이다.


선풍기 바람을 싫어하는 사람

어릴 적엔 선풍기를 밤새 틀어두면 몸에 무슨 병이 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다행히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미신에 대한 말씀 없이 시원하게 나에게 선풍기와 에어컨 바람을 쐬게 해 주셨는데, 반대로 내가 선풍기 바람을 거부하곤 했다. 어쩐지 인위적인 바람 특유의 냉기가 나를 서늘하게 하고, 피부를 아프게 하는 느낌이 늘 싫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 난 여전히 아무리 더운 날에 땀이 주룩 흐르고 있어도 버스에 타서 에어컨의 바람이 날 향하고 있다면 그 즉시 서둘러 끄거나 다른 쪽으로 돌려버린다. 어쩐지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그 거센 바람이 나는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역시 집에서 잘 때도 선풍기를 틀 때면 다리로 향하게 틀어두는데, 다리에는 꼭 얇은 이불을 덮어두어야 한다. 바람을 직방을 맞으면 찾아오는 다리가 퉁퉁 붓는 그 느낌이 너무 싫달까. 아유 이렇게 쓰다 보니 정말 예민보스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조용히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이기 마련인데, 그 예민함을 티 내지 않고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사부작사부작 다소 바쁜 사람이 된다.

여름의 이중성

아무튼, 그렇게 선풍기와 에어컨의 직접적인 풍력을 싫어하다 보니 나는 웬만한 더위는 잘 견디게 되었다. 땀이 좀 흘러도 그냥 견딜만하고, 뜨거운 햇살 아래라도 양산만 있다면 걸을 수 있다. 오히려 날 못 견디게 만드는 건 습도와 꿉꿉함.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여름의 쉰내다. 그러니까 여름은 참으로 낭만적이면서도 사람의 코를 찌푸리게 만드는 이중적인 구석이 있다.


냄새에 예민한 사람으로서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우선 나로부터 발생할 불쾌한 냄새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 두 번 샤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외부의 냄새는 나로서 어찌할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에 대중교통 혹은 공공장소를 지나칠 땐 숨을 얕게 쉬어야 한다. 최대한 코를 찡이지 않게 빠른 걸음도 함께 탑재하기. 나만의 여름철 나기 묘책 중 하나다.


낭만을 느끼기 위하여

여름 바닷가, 여름의 피서, 쨍한 햇살 아래서의 독서 등 여름은 정말 낭만의 계절이다. 그러나 사계절 중 가장 사람을 예민하고 짜증스럽게 만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이중의 계절, 여름을 잘 나기 위해선 늘 나의 상태를 ‘여유로움’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손풍기를 들고, 누군가는 집콕을 하고, 또 누군가는 빙수와 수박을 먹을 것이다. 나는 그 여유를 위해 오늘도 에어컨 바람이 풍기는 집을 벗어나 햇빛 아래로 간다. 그 더위를 뚫고 도착한 곳에서 햇살을 내리쬐며 읽는 독서의 시간만이 나에게 여유로움을 줄 수 있다. 그때 곁들이는 아이스카페라떼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호화스러운 친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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