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경험은 취향을 만든다.
엄마와 나의 그 시절, 소확행
내가 아주 어렸던 20여 년 전부터 한결같이 우리는 일상 속 여유를 즐기며 카페에 가는 걸 정말 좋아했다. 여전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에 느낀 카페에서의 시간은 지금과는 비할 수 없게 더 소중하고 찬란했다.
내가 6~7살 때부터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동네 곳곳의 카페에 가곤 했다.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는 출근 전, 퇴근 후처럼 아주 잠깐의 시간이 나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 위치한 어린이집(현재는 서울연극센터가 된 그곳)을 다니던 때엔 등원하기 1시간 전, 어린이집 앞에 있는 신라명과에 들러 내게는 좋아하는 고급 초콜릿을, 엄마는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을 가는 아침마다 나는 늘 바쁜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또 어떻게든 엄마와 함께하려고 자주 어리광을 부렸다. 아득하고도 정신없이 흘러가는 아침의 시간을 쪼개서 그런 잠깐의 데이트를 하고 나면 어느새 나의 어리광은 눈 녹듯 사라지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행복을 가득 채운 채 어린이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코 앞의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아주 느릿느릿, 어린이집을 오르는 2층에서 3층 남짓의 계단도 거북이처럼 미적미적 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야근이 많은 대신 비교적 출근 시간이 자유로웠던 엄마는 잠깐의 아침 시간을 아주 빛나게 활용했다. 물론 이른 시간이라도 종종 어린이집 지각은 면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그런 선택의 순간마다 엄마는 이런 날 이렇게 조금 노는 거지~라고 은밀한 미소와 함께 속삭이며, 내게 여유를 건네주었다. 돌아보면 엄마도 느긋하게 아침을 느끼며, 좀 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쉼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늘 잠깐이라도 시간의 틈이 보이면 나와 함께 뭔가를 하려고 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내가 좀 크고 난 뒤, 엄마에게 “그때 엄마는 안 힘들었어?”라고 물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장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엄마에게 쉼이자 충전, 그리고 행복이었기에 당연한 거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와의 시간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고픈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도 덧붙여주었다.
유딩 시절부터 엄마 따라 자주 카페에 갔던 덕에 나는 고급 수제 초콜릿과 조각 케이크, 녹차라떼 등 각종 디저트들에 일찍이 눈을 뜰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콜드스톤’이었다. 엄마와 내가 이해하고 말하기 쉽게 ‘돌 아이스크림’이라고 얘기했는데, 주문과 동시에 차가운 돌판 위에 아이스크림과 재료를 올린 뒤 으깨며, 눈앞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수제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그 시절 프랜차이즈 고급 아이스크림 매장이었다. 한동안 엄마랑 산책을 하거나 공연을 보고 나서 그걸 먹는 게 나의 행복이자 낙이기도 했다. 이리도 행복의 맛과 시간으로 가득한 입력값 덕분에 아무리 피곤해도 엄마가 산책을 가자고 하거나 집 앞에 카페를 가자고 하면 나는 ‘산책’이라는 말에 즉각 반응하는 강아지들처럼 신이 날 수밖에.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우리의 아지트 같은 카페 나들이는 계속되었다.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버스 타고 금방 갈 수 있는 광화문 광장으로 가서 분수대를 구경하다가, 한스델리를 먹고, 역시나 카페에 갔다.
엄마가 카페에서 친구나 동료를 만날 때, 혹은 주말에 잠시 회사에 들른 엄마를 따라 쫓아갈 때 나는 엄마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껌딱지가 되기 위해 바로 옆 한구석에 앉아 조용히 나의 ‘일’을 하는데 특화되어 갔다. 딱히 엄마가 내게 조용히 하라고 하거나 엄하게 한 게 아닌데도 나는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내 일을 하는 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다이어리 꾸미기, 컬러링 북, 스토쿠, 네모로직 등 카페에 앉아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은 다양했다. 그때의 몰입과 집중의 재미를 본 덕분에 지금의 나는 취미 부자가 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경험이 쌓여가자 어디를 가든 뭔가 할 것을 챙겨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으로 인해 카페에 갈 때도 나는 늘 가방에 이것저것을 챙겨가는 스타일이 되었다.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에 가는 날이면 나는 다이어리와 스티커를 가방에 담고, 엄마는 노트북을 챙겼다. 내가 초딩 시절일 당시는 카페베네가 한창 유행하던 때라 그 지푸라기 같은 의자가 가득했던 갈색 이미지의 동네 카페 베네에 자주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의 추억 따라 나는 여전히 카페에 오면 편안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 사이로 앉아있는 나의 자리가 참 편하고, 한 잔 마시는 이 음료의 맛이 너무 좋다. 그리고 그때 뭔가를 하는 이 찰나가 온전히 나의 것처럼 느껴져서 생각이 많거나 심심하거나 답답할 땐 자연스레 카페를 찾게 된다.
이젠 달달한 음료나 아이스크림 대신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달콤함은 결코 흘러간 시간에 묻혀 흐려지지도 잊히지 않고 존재한다.
엄마가 내게 알려준 일상 속에 담긴 잠깐의 여유와 행복을 느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