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을 괴롭히지 말고 공부 좀 하세요.
직장에서 자리가 높아질수록,
사람은 점점 게을러진다.
게으름은
본인의 성격과
직장의 구조적 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자기 손으로 뭘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가면, 많은 것들이 ‘알아서’ 굴러간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네이버나 구글을 뒤질 필요도 없다.
밑의 직원에게 “이거 좀 알아봐줄래?”라고 말하면,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가 책상 위에 놓인다.
요즘은 챗GPT가 그런 역할을 더 잘해주는 시대지만,
윗세대일수록 아직 AI 활용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사람을 부린다. 그것도 아주 많이.
특히 중요한 보고가 다가올 때,
직원 부려먹기는 절정을 찍는다.
상사 본인이 불안하니까, 수십 개의 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A를 분석해달라고 했다가, B도 궁금하다고 하고, 나중에는 C와 D까지 연결시켜 보라고 한다.
보고서가 쌓일수록 직원의 한숨도 깊어진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렇게 불안을 많이 느끼는 상사일수록 자기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니까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자료를 더 달라고 하고, 그렇게 받은 자료는 결국 또 읽지 않는다.
직원 입장에서 가장 허탈한 순간은,
밤늦게까지 만들어 간 자료를
상사가 대충 넘겨보는 장면이다.
더 허탈한 건, 그 자료가 중요한 자리에서 제대로 쓰이지도 않을 때다.
자료를 요청한 이유를 다시 되짚어 보면,
그 메인 보고서 자체를 깊이 읽지 않은 티가 나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분명히 본인이 더 잘 알아야 하는 영역인데, 왜 나한테 시키는 거지?"
자신의 직책상 더 넓은 그림을 보고 있어야 하고,
각 부서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오히려 엉뚱한 부서에 자료를 요청하고, 그 부서를 피곤하게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고를 왔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부서가 제일 부리기 쉬우니까.
문제는 그렇게 시킨 자료가 정작 그 사람의 업무 이해도를 높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고의 핵심을 놓친 채, 불안한 감정만 자료로 덮으려다 보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깨지는 건 본인이다.
그 불안은 다시 직원들에게 되돌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의 지시에 따라, 의미 없는 일을 하게 된다.
비효율을 욕하면서도, 결국 자료를 만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이럴 때 문득 든다.
“월급은 이런 스트레스를 감내한 값이구나.”
좋은 상사란 어떤 사람일까.
괜히 일을 많이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을 줄여주는 사람이다.
불안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업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한 것만 요청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능력 있는 상사다.
오늘도 안다.
지금 이 일이 크게 의미 없다는 걸.
그럼에도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지시가 내려왔고, 나는 월급을 받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