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브런치 초창기에 발행했던 글로, 브런치북 발간을 위해 재발행합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엄마 밥을 먹었다.
별말은 없으셨다. 어깨만 두드리셨다. 툭툭.
그 손길에, 괜히 울컥한다.
엄마 밥이 그리웠던 걸까.
아니면 오늘 이혼해서 그럴까.
아이가 안 생겼다. 그냥, 그 때문이었다.
드라마라도 기대하는지, 다들 자꾸 묻는다.
“아니, 그냥 성격 차이.”
그렇게 말해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팻말이라도 달고 다녀야 할까.
물론 진짜 이유를 말한 적은 없다.
분명, 둘만이어도 좋았다.
우린 처음처럼 사랑했고, 신뢰했다.
고백하자면, 아직도 그렇다.
수많은 여행, 함께한 취미들,
울고불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십 년 동안 쌓은 기억이라면
작은 호수는 채우지 않을까.
정말, 둘만이어도 충분했었다.
우릴 갈라놓은 건, 아주 잠깐이었던, 셋이었던 순간이다.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을 한 글자씩 땄다.
파스텔 톤 방에 작은 침대를 두고, 그 아래 조그맣게 이름을 붙였다.
퇴근 후엔 질리도록 이름을 부르고, 동화를 읽고, 하루 있었던 일을 속삭였다.
“이제 그만 좀 해. 양수 속에 있어서 안 들린다더라.”
못 들은 척, 끝없이 이름을 불렀다. 말을 걸고, 책을 읽고.
와이프 말을 그렇게까지 안 들은 건, 그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6개월이라는 시간.
그 행복의 강은 더없이 깊었다.
그만큼, 가라앉는 데도 무한한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서로의 이름을 하나로 모은, 그 이름이 사라졌다.
떨어진 관성 때문일까.
우린 마치 바다 위 떨어진 섬 같았다.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지만 다가가진 못했다.
나란히 있지 못하고, 서로의 배경으로만 존재했다.
왜 조금 더 다가가지 못했을까. 왜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을까.
난 멍청하고, 게을렀다.
그저 새로운 다리라는 기적을 기다렸다.
노력 없이. 양심 없이.
하지만 그 섬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섬에 남기로 했다.
한국의 이혼 과정은 길고 힘들다지만, 우리는 조용히 끝을 향했다.
오늘이었다. 이름을 다시 나눈 날.
고맙단 말도, 잘 지내라는 인사도 없이,
결국 서로를 배경으로만 한 채 멀어졌다.
서로의 흔적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내가 들고 나온 건 작은 침대 하나.
십 년 결혼 생활에서 남은 건, 그게 다였다.
그리고 지금, 난 엄마 밥을 먹고 있다.
내게 이름을 지어준, 엄마 밥을.
“엄마, 계란에 간장 좀 적당히 뿌리라니까.”
울컥해서 괜히 투정부터 나왔다.
“그래. 미안타, 밥 좀 더 먹어라.”
차라리 잔소리라도 해주지.
엄마가 왜 미안하단 건데.
괜히 말을 꺼내서, 밥이 더 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