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고관절 골절 후 세 달째다. 의사는 회복이 너무 느리다며 이제는 잘 걸어야 한다고 했다. 앞에선 잠자코 있었지만, 지가 늙어서 한번 해보라지. 얼마나 아픈지. 쇠꼬챙이로 쑤시는 것 같은데, 겪어보지도 않고... 걷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은 10년 전 자신이 허리가 아파 꼼짝 못 할 때 이를 악물고 운동해서 이겨냈다며, 나 보고도 운동 좀 하라고 어찌나 잔소리인지... 눈물이 나는 걸 참고 걸었다고 자랑하듯 말하지만, 지는 그때 60대였고 나는 이제 일흔을 훌쩍 넘겼다. 겪은 세월이 한참 다르다. 나라고 마음 같아선 해내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몸이 말을 안 들어주니 서러울 따름이다.
오늘도 딸은 그냥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며 성화다. 말만으로도 참 고맙다. 뭔 주책인지 눈물이 다 나더라. 사실 아들놈 집에 신세 질까도 생각했는데, 며느리랑 상의하겠다더니만 어느새 말이 쏙 들어갔다. 그래도 서운치 않다. 사돈댁 건강도 여의치 않으니, 이해는 간다. 그래도 한 번씩 찾아오며 마음을 써주는 게 어디냐 싶다.
점심 무렵 요양보호사가 찾아온다. 이제 나 좋아하는 칼칼한 된장국을 끓여주겠다기에, 됐다고 맵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나는 옛적부터 매운 걸 좋아했지만, 남편은 매운 건 입도 못 댄다. 사십 년을 살았는데도 내 입맛에 맞춰주려는 성의조차 없었다. 그게 늘 서운하다. 그래도 버릇처럼 또 맞춰주게 된다.
요양보호사가 방청소를 하는 동안,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 채널을 틀어둔다. 자막도 안 보이고, 꼬부랑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뭔 재미로 죽어라 영화 채널만 고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안방에 드라마를 틀어두면 허허 웃으며 재미있어하면서도, 거실 테레비만큼은 꼭 영화를 틀어야 직성이 풀린다. 참, 답답하다가도 우습다.
저녁 무렵, 워커에 몸을 의지해 재활 삼아 집 앞 마트로 나갔다. 남편이 좋아하는 참외를 한 봉지 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억울하다. 나는 도통 참외가 입에 쓴데도 평생 억지로 먹어왔는데, 얼마 전 아들이 그러더라. 그게 뭔 유전자 때문이라고, 내 혀가 참외 맛을 쓰다고 느끼는 거라고. 평생 이 맛있는 걸 모른다고 구박받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어찌나 억울하던지. 괜히 남편을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요즘 밤엔, 부쩍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힘내라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사실 나는 아직 그 정도로 심한 상태도 아닌데, 다들 어찌나 나를 걱정해 주는지. 고맙기는 하다. 아마도 이제 무소식이 희소식일 시기라 그런가 보다. 고관절 골절로 요양등급 받은 나도 나지만, 사실 이 나이면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거늘... 나이 먹으니 다들 더 서로가 애틋해지는 모양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 새벽 두 시에 추워서 깼다. 열대야라 난리인데도, 늙은 몸은 밤이면 다리부터 시리다. 어릴 적부터 이불을 걷어차던 버릇이 있었는데, 결혼한 뒤엔 남편이 늘 다시 덮어줘서 푹 자곤 했다.
눈을 비비다 옆의 빈자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찾는다. '여보?'
맞다. 나도 참...
베갯잇이 축축해진다. 주책이다. 저번 주 장례식장에서는 꾹 참아냈는데, 겨우 이불 때문에... 옆에 사람 하나 없어진 게 뭐 그리 춥다고... 남편의 베개를 끌어안고 엎드려 하염없이 끅끅댄다. 새벽은 왜 이리 긴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놓고 진짜로 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