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 내가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할까?
10대부터 40대가 된 지금까지 나이 대마다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모두 달랐던 것 같다.
10대엔 학교 숙제로 시작한 일기 쓰기가 첫 번째 동기였다. 그리고 사춘기 소녀일 땐 앙팅장이라는 소위 말하는 친구들과 나눠 쓰고 바꿔 쓰는 교환일기로 바뀌었고, 그 재미에 빠져 친한 친구들에게 구구절절 써주는 편지로 진화했던 것 같다.
그땐 몰랐는데 나는 편지를 쓰며 상대방에게 멋진 말로 위로 또는 칭찬을 해주는 것이 보람 있었던 것 같다. 꼭 물질적인 선물을 줘야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라 글 하나로도 위로와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 눈치챈 거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시절 싸이월드라는 플랫폼에서 허세 가득한, 어른 인척 하는 글들도 여러 번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끄럽지만 그땐 나름 진지했었다.
20대에 글 쓰기는 대학교 시험에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써내려 갔던 장황한 글짓기부터 남자친구와 나눈 사랑 가득 담긴 연애편지까지 10대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만의 필터를 여러 번 거쳐서 글들을 써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수가 보는 글이라기 보단 소수에게 초점이 맞춰진 글이었기에 내 글을 봐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던 것 같다.
30대엔 하루 걸러 하루이지만 나의 일상들을 일기장에 수기로 기록하며 글을 남겼고,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육아일기에 한 풀이를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렇게 4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우당탕탕했던 지난날의 나를 위로해 주고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청자가 되어 날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쳐지나 온 시간들을 잘했다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날 들여다보는 글쓰기로 모닝페이지를 100일간 써보았다.
40대가 되어도 방황할 수 있고, 정답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남들이 다하는 어떤 것들이 나는 아닐 수 있다는 것. 그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어릴 땐 막연히 40대가 되고 부모가 되면 어느 정도 위치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들을 마음껏 누리고 해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난 10대의 생각 많은 소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걱정 인형이다. 이런 나를 격렬히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려 글을 쓴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지천명 50대가 되면 나의 글쓰기 동기는 무엇일까?
아직은 꼬꼬마인 우리 아이들에게 멘토로서 해주고 싶은 세상사는 지혜들을 글로 남겨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부모가 되고 가장 강력한 동기는 나를 우주로 생각해 주는 우리 아이들이다. 내가 전해주는 메시지로 힘들고 치열한 세상을 조금 더 마음 편히 살아갔으면 하는 엄마의 노파심이 아닐까?
나의 세월마다 글을 쓴 동기는 다르지만,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글쓰기가 나의 일상에 늘 함께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지금 내가 써 내려가는 글 들 속에 나만의 색깔로 잘 드러나길 바라며 사소한 글이라도 잘 써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