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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해요? 는
질문이 아니라 신호였다.

by Amberin

오늘 뭐해요? 는 질문이 아니라 신호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뭐 해요?”

아이들이 학원 문을 열며 던지는 첫마디.

질문 같기도 하고, 인사 같기도 하고, 때로는 외침 같기도 했다.


처음엔 그저 오늘 수업 내용을 묻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익숙한 말 한 줄 뒤에 숨겨진

마음을 천천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어느 정도 다니다 보면

이곳의 규칙과 흐름에 익숙해진다.

스스로 알아서 연습하고, 해야 할 일들을 척척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독, 매일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오늘 뭐 해요?”

“피아노 먼저 칠까?라고 답해주면

그럼 연습 끝나고는 뭐해요?”

그 말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마치 하루를 여는 주문처럼, 매일매일 입에 올리는 의식 같았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그 질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학원에 오면 아직도 많이 낯선가?'

1년을 넘게 다닌 아이들이 그러면

내 속은 점점 조급해졌고, 아이들의 말은 점점 더 느긋해졌다.

그래서 그 습관을 고쳐주려 시도했었다.

“학원 오면 해야 할 일”이라고

벽면에 크게 써 붙이기도 해 봤고

학년 높은 언니 누나에게 작은 선생님이 역할도 맡겨봤다.

하지만,... 역시나,....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 말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엄마, 나 왔어~”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오늘 뭘 할 거예요?’가 아니라,

‘선생님, 나 왔어요. 여기 있어요. 이제 함께 있어요.’

라는 마음의 신호였다.


아이들은 단지 연결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그 존재를 반겨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선택지를 건넸다.

“오늘은 뭐 먼저 하고 싶어?”

“지금 바로 연습할래? 아니면 잠깐 쉬었다가 할까?”

그리고, 나의 특기인 ‘기다려 주기’를 시작했다.

작은 동네이지만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난 건

이 ‘기다려 주기’를 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간에 쫓겨 조급하게 움직였다.

진도 맞추기, 연습량 채우기, 다음 학원 수업 시간 준비하기로

수업은 늘 빠듯했고, 나는 그 조급함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기다려 주기로 마음먹은 순간,

진짜 중요한 걸 다시 보게 되었다.

‘오늘 연습 다 못 해도 괜찮아.’

‘진도 조금 느려도, 그게 뭐 어때서.’

그렇게 여유를 품으니,

아이들도 나를 따라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은 오히려 더 알차고 따뜻해졌다.

때로는 피아노 앞에서, 때로는 간식 앞에서

아이들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나와 더 친밀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수업은 늘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됐다.

조급함이 사라지니, 오히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다.

그건 내게 아주 특별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먼저 여유로워지니, 아이들도 그 흐름에 맞춰온다.'


아이들과 나는 그렇게 부드러운 리듬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밀지 않고, 누구도 끌려가지 않는

그런 느긋한 리듬을...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었다.

그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함께 머물 줄 아는 용기’였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따뜻함’이었다.

이 느낌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피아노 소리만 흐르는 교실이 아니라,

마음이 흐르는 교실이 된 것이다.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마음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마음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하루는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만 그걸 꺼내 보이기 전에

어른들의 사랑을,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낮은 시선으로 한 번 눈을 마주쳐주고,

한 마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조금만 여유를 내어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의 자리를 찾고,

자기 할 일을 기특할 만큼 잘 해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뒤에서 후원하며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옆에서 기다리며 지켜봐 주는 거였구나.’라는 것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믿음,

그 믿음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건강하고 바르게 잘 성장한다.

아니, 오히려 그 믿음이 있어야 잘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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