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그녀가 떠났다.
나는 붙잡지 못한 채,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무했다.
‘나야’라고 말하지 못했고,
그저 알아주기를 바랐던 나의 모습은
결국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싸이월드를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그녀의 일기엔 또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다음엔 바뀐 모습이라도 알아볼 테니,
밥 한번 하자.”
그 말 한 줄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었다.
상처 주고 도망쳤던 내가,
그녀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던 그날의 나로,
‘나야’라고 말하기엔 너무 뻔뻔해 보였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일기장은 평온했다.
늘 그렇듯 덤덤히,
자신의 일상을 담담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 변함없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상황을 피하더라도,
그녀의 마음만은 여전하겠지.’
그 착각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3년 뒤,
그 착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올라오던 일기는
삼일, 일주일, 한 달… 점점 느슨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의 싸이월드는 닫혀 있었다.
“싸이월드는 하지 않아요.
용건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짧은 문구 하나가
모든 걸 끝내고 있었다.
‘설마 네가?’
‘그렇게 나를 좋아하던 네가,
정말 나를 잊을 수 있을까?’
믿기지 않았다.
그 궁금증이
나를 집착으로 몰아넣었다.
매일같이 그녀의 싸이월드를 들락거렸지만,
그 공간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군대를 면제받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그 시기까지도
그 문구는 그대로였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 사랑으로,
내가 빛나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사랑을 잃고 후회하고 있었다.
있을 땐 익숙함에 안심했지만,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달았다.
‘정말 나를 잊었을까?’
그럼에도 떳떳하게 연락할 용기는 없었다.
비겁하게, 술에 취해 발신 제한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끊곤 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나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힘듦을 알고도
내 자존심이 먼저였다.
그 우위의 착각 속에서
안도하며 버텼던 나였다.
그 안도감이 사라지자
불안이 찾아왔고,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졌다.
인정받지 못하는 패배감은
오히려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어느 새벽,
그녀의 일기장이 다시 열렸다.
정말 너무 많이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싸이월드에 들어오지 않아도 돼요.
너무 많이 좋아해서,
이제는 그렇게 누굴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각자 갈 길 가요.
행복하세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물이 턱 끝에서 옷자락을 타고 스쳤다.
이미 그녀의 마음 한 자락에도
들어갈 틈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그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하지 못했던 말이
가슴 어딘가에 남아
머릿속 어딘가를 맴돌았다.
추억은 늘 그렇게 되살아난다.
완성하지 못한 결말처럼 꿈틀대며,
그녀의 온기가 내 귓가에 스며든다.
그리고 입가엔,
그때의 옅은 미소가 다시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