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금만 더 가까이 갔다면...

by 진심의 온도

눈빛에는 억눌러온 그리움이 사무쳐 있었다.
그 순간, 억눌림은 뜨거운 눈물이 되어 번졌다.


잠깐의 시선이 결국 그녀의 눈을 끌었다.


‘내가 많이 달라지긴 했나 보다.’


그녀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날 쏘아보듯 휙 바라본 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짧은 눈빛만으로도 말하고 싶었다.


“나야. 네가 그토록 잊지 못했던 나라고.”


다시 마주한 눈빛에는 경멸이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걸음을 떼지 못하면서도,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계속해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어깨를 떨었다.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다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나는 무거운 몸으로 힘겹게 걸어가면서도, 그녀의 눈, 코, 입 하나하나를 뜯어보듯 바라봤다.
그녀 또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세 자리 수 체중으로 버겁게 걷고 있는 나.
그 모습에 스스로도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짧은 1분,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질수록 두려움이 밀려왔다.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려 나는 결국 비상구 계단으로 몸을 숨겼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5일 오전 01_13_59.png




바뀐 내 모습을 들켰지만, 어쩌면 알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래도 넌 나를 좋아할까?
넌 나를 받아줄까?
아직 우리에게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을까?’


그날 밤, 나는 다시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일기를 보았다.


뚱뚱해도, 모습이 달라져도 괜찮아. 건강하게만 지내면 돼.


그 말이 나를 흔들었다.
나 자신이 다시 당당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다짐했다.
살을 조금이라도 빼고, 다시 나타나겠다고.


그날부터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간표와 동선을 확인하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준비했다.



서현역에서 산본역까지 이어지는 3500번 버스 노선,
그 중간 어딘가에서 합류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마주했다.


맨 뒷자리에, 초췌한 차림으로 홀로 앉아 울고 있는 모습.
이번엔 나를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5일 오전 01_21_03.png


등을 두드리자, 그녀는 잠깐 쳐다본 뒤 곧 고개를 돌렸다.
허벅지를 찔러도, 겨우 눈을 흘기고 다시 창밖만 바라봤다.


실소가 나왔다.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눈을 감고 기다리자, 그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천천히 내 얼굴을 훑는 그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버스에서 내리며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그 뒤를 따르지 못했다.







만약 그때,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지 못했던 행동은 끝내 후회가 되어,
미련이 되어,
지금도 나를 붙잡는다.


그때의 싸이월드.
20대의 찬란했던 시간 속의 나.


그리고,
대학 시절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해 준 너.
고마웠어.










keyword
이전 11화붙잡지 못한 순간들을 붙잡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