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울타리가 설치된 마당, 많지 않은 숙박객, 그리고 대형견 숙박 가능.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펜션을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예약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펜션은 대부분 소형견 위주였고, ‘15kg 미만’ 가능하다고 해도 보더콜리라고 하면 거절하는 곳이 많았다. 결국 직접 하나하나 문의해 예약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좋은 독채 펜션은 이미 예약이 차 있었고, 성수기라 가격도 부담스러웠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찾는 김에 나만의 펜션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이 가본 곳과 나의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곳만 모았다. 그렇게 메모장에 쌓인 리스트는 어느새 26곳에 달했다.
성산이 비옷과 바람막이뿐 아니라, 얇은 일상복도 몇 벌 있다. 옷을 좋아하지 않는 성산이지만, 옷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옷을 입히면 산책 중 시비 걸리는 일이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성산이가 귀엽게 입은 옷 +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나의 선글라스가 산책 필수템이었다)
그래서 여행 때는 성산이의 일상복과 내 옷을 맞춰 커플룩을 챙겼다.
작은 캐리어에 옷과 짐을 넣으면서, 이번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설렘이 한가득했다. 원래도 부지런한 우리라, 아침 산책까지 마친 뒤 출근 시간대를 피해 일찍 출발했다.
놀 때 더 부지런해지는 우리 둘
휴게소에 들르고 여유롭게 이동했는데도 너무 일찍 도착했다. 체크인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성산이와 바닷가에 오다니!’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파도가 계속 치는 해변에서 원반을 던졌다. 파도가 세서 성산이가 무작정 들어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바다는 처음이라 마음껏 즐기진 못했지만, 원반을 척척 물어오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다 조금 멀리 던진 원반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성산이도 놀랐는지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 “괜찮아, 우리에겐 공이 있잖아. 저건 또 사면 돼.”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다 파도가 잔잔하고 발이 닿는 얕은 곳을 발견했다. 성산이는 이곳에서 한층 신나게 뛰어놀았다. 흐린 날씨 덕에 주변에 사람도 없어, 한여름인데도 시원하고 한적하게 놀다 숙소로 향했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잔디밭
숙소의 잔디밭은 아무도 없어, 우리만의 놀이터가 되었다. 공을 물고 달려오는 성산이의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왔는데도 낯선 공간에서 잘 놀고 잘 쉬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성산이 7살이 되던 해,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성산이를 중심에 두고, 그 외의 일들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야말로 성산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삶의 이유를 그에게서 찾고 있었다.
성산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행이었다.
‘너만이 내 삶의 이유야’를 알아들었다면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아마 성산이는 이미 마음으로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부담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나는 혹시나 다칠까 봐, 무서워할까 봐, 성산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조차 제한했다. 하지만 성산이는 생각보다 잘 해냈다. 훨씬 용감한 나의 강아지였다.
나의 불안을 성산이에게 전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작은 목표를 세웠다. 여유로운 펜션 여행을 종종 하며, 온전히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자고.
그렇게 이번 여행은 우리 안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