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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개손주가 가까워지게 한 우리

고봉밥 고봉고구마

by 최지현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평가에 민감했다. 강박적으로 깔끔한 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학교에 올 때면 책상 서랍 속 책들을 모두 꺼내 사물함에 넣고 잠가버린 채 하교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을 해도 “깔끔하다”는 말을 듣기 어려운 엄마를 알기에, 잔소리를 원천 차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았다.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되지만, 고집이 센 나는 아예 말 자체를 꺼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내 방식대로 해야 할 일은, 굳이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해치우는 것이 편했다. 그래서 성산이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부모님은 개를 키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실 게 분명했고, “더 크기 전에 보내라”는 말을 들을 게 뻔했다.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이불은 본가의 기본템인 것일까

보내라는 말을 하지 못하실 무렵, 성산이를 데리고 본가에 갔다. 누가 봐도 나와 성산이는 유대가 깊었기에, 부모님도 어쩌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털이 날릴까 봐 옷을 챙겨 입혔고, 명절이니 예쁜 한복도 준비했다.

엄마는 성산이를 보자마자 “생각보다 크네”라며 기겁했고, 아빠는 “애가 말랐다”는 말부터 꺼냈다.



인사를 마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엄마는 “애 갑갑하니까 옷 좀 벗겨”라고 하셨다.

“털 덜 날리라고 입힌 거니까 괜찮아”라고 했지만, 부모님 눈에는 영 갑갑해 보였나 보다.

그 후로 성산이는 본가에 가면 옷 따위 입지 않는 자유로운 강아지가 되었다.


“애한테 뭘 안 주냐, 왜 이렇게 말랐냐.”
그날부터 부모님의 시선은 온전히 성산이에게만 향했다.
눈치 빠른 성산이는 곧 알아챘다.


‘아, 이 사람들은 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구나.’


성산이가 심심해 보인다며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곰인형을 성산이한테 줬고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성산이는 신나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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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눈에는 용납되지 않은 마른체형의 성산이, 고구마가 고봉으로 담겨있다.


성산이가 낯선 공간에 빨리 적응하도록 몇 가지 장난감과 간식, 켄넬을 챙겨 갔다. 그중 고구마를 으깨 넣어주는 장난감에는 엄마가 고구마를 ‘산더미’처럼 넣어주셨다.


“애가 말랐다”면서 많이 먹여야 한다고 하셨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해도 부모님은 듣지 않으셨다. 아빠는 손질도 안 된 북어를 손질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또 고구마를 찌기 시작했다.


‘얘는 사료 먹고, 가끔 사과 주면 돼요.’


그날 저녁, 사과 한 박스를 들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았다. 저녁은 성산이도 먹을 수 있게 고기를 구워 먹었다. 밑간을 하지 않은 성산이 고기부터 구운 후 우리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래서 성산이는 고봉고구마도 먹고 고봉으로 밥도 먹었다. 나보다 더 많이 먹은 거 같았다.


부모님의 관심이 나에서 성산이로 옮겨가자, 마음 한구석이 조금 편해졌다. 무엇보다 성산이가 있어도 부모님이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활기가 도는 듯해 더 좋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성산이를 데리고 본가에 내려간다. 부모님은 성산이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다 큰 자식은 챙길 일이 없고, 챙겨도 거절하기 일쑤지만, 이 귀여운 강아지는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고, 받고, 관심을 갈구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이에는 잔소리 대신 웃음이 오갔다. 성산이가 그 한가운데 앉아,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풀리지 않을 것 같던 관계도, 이렇게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본가에 가면 반가워서 달려 들어가는 성산이를 보며, 나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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