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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새로운 주인

사랑의 밀도에 관하여

by 최지현


성산이는 낯선 사람이 먼저 다가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성산이를 키우며 모든 개가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산이는 사람에게 곧장 다가가기보다는 한참 지켜보다가 움직인다.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아예 다가가지 않기도 한다.


그런 성산이가 남편과 처음 만난 건 여덟 살 때였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처음 만날 때 먼저 아는척하지 말고 모르는 척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역시나 성산이는 혼자 탐색을 끝낸 뒤에야 남편에게 다가왔다. 성산이를 함부로 만지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준 덕분에 남편은 이때부터 성산이의 최애가 된 것 같다. (물론 나는 여전히 0순위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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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 남편은 새로운 음식으로 성산이 밥을 만드느라 무척 바쁘다


여행을 가면 남편은 늘 성산이의 밥을 챙기느라 바쁘다. 펜션에 함께 가는 시간이 쌓이면서 성산이도, 남편도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성산이가 아직 먹어보지 않은 재료로 저녁을 차려주는 걸 무척 즐거워했다. 반면 걱정이 많은 나는 매번 “강아지가 새우 먹어도 되나요?” “양고기는 괜찮을까요?” 같은 확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옆에 딱 붙어있어도 가만히 있는다

성산이는 원래 안기거나 몸을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 옆에서는 의외로 잘 붙어 있다. 나와 함께한 세월이 훨씬 길지만, 남편과의 유대가 더 단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바쁘던 부모님 대신 이모와 할머니가 돌봐주신 시간이 기껏해야 3년 남짓이었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훨씬 선명하다. 할머니와 함께 다듬던 콩나물, 이모와 함께 만들던 어버이날 하트 초는 부모님과의 긴 세월보다 더 깊게 남아 있다. 부모님과도 함께 여행을 다녔고 20살까지 같이 살았지만, 일상 속에서 나에게 집중해 준 건 이모와 할머니였다. 아마 그 따뜻한 집중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성산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와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지만, 머리를 쓰게 만드는 남편의 놀이와 코칭이 성산이에게는 더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나는 주로 산책과 공놀이를 해줬다면, 남편은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고 성산이가 스스로 성공할 때까지 10분이고 20분이고 기다려준다. (둘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참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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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려줬더니 텃밭에 누워서 반항하기도 한다(절대 안통할때도 물론 있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알려줄 수 있는데 성산이는 조금만 하면 알아.'


남편은 성산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급할 게 없다는 주의다.


물론 그 기다림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텃밭에 드러누워 반항하기도 하고, 결국 실패하기도 한다. 그래도 성산이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며 즐거워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사랑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진짜 깊이를 만드는 건 양이 아니라 밀도다.


남편의 기다림과 창의력이 보태지며 성산이의 하루는 더 풍성해졌다. 그 밀도가 쌓여 만들어지는 오늘을, 나는 매일 감사히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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