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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귀를 닦아주고 털을 말려주는 일

함께 늙는 일도 나쁘지 않아서

by 최지현


집 마당에서 노는 정도면 충분해진 체력


성산이가 나이가 들면서 더 잘 맞아가는 것들이 생겼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부분도 분명히 있다.


좋아지는 점들에 더 집중하려 애쓰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도 마음 한편에서 성산이의 늙음을 인정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성산이는 여전히 잘 놀고, 잘 먹는다.
자기만의 루틴이 있어서 아침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빤히 쳐다보고, 저녁을 먹고 장난감을 주지 않으면 낑낑댄다.


너무 징징거려서 혼나기도 하고, 몰래 발을 핥다가 또 혼나기도 한다.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돌봐야 할 일들이 조금씩 늘었다.




장난감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예전에는 원반이나 공놀이처럼 격하게 뛰노는 시간이 많았다. 요즘은 그런 활동이 줄어서 발톱이 금세 자란다. 주기적으로 발톱을 다듬어 줘야 한다.


예전에는 놀이가 곧 관리였다면, 이제는 그 빈자리를 손으로 채워준다.



성산이는 수술 이후 아래턱 한쪽 치아를 제거했다.
그 뒤로는 혀가 살짝 흘러내려 침이 턱 아래 털에 묻곤 한다. 털이 꼬불꼬불해지고 젖은 채로 남지 않도록 수시로 닦고 말려준다.


항상 밥을 급하게 먹는 편이라 이전에도 자주 젖어있긴 했지만 요즘은 항상 젖어있어서 자주 말려줘야 한다.




“귀 닦자.”

성산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성산이는 어릴 때부터 알레르기 반응이 귀로 왔다.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귀지가 늘어나고, 심하게 간지러워했다. 이제는 맞는 사료만 먹는데도

귀 상태는 늘 완벽하지 않다. 항생제를 쓰면 잠시 괜찮지만 결국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귀 청소를 제일 싫어하면서도 어차피 해야 된다는 걸 아는지 참고 기다려주는 게 아주 기특하고 귀엽다.








병원에서는 항상 의자에 숨는다

수술 이후, 노화로 인한 수치 변화가 있었다. 특히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그때 이후로 시판 간식을 완전히 끊고, 3개월 동안 약을 바꿔가며 병원을 다녔다.


하지만 수치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료를 바꿔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고단백 사료에서 간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저단백 사료로 바꿨더니 그토록 떨어지지 않던 수치가 안정되었다.


허무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사료 하나로 해결될 일을 몰라서

몇 달을 약에 의지했다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그 일로 알게 되었다. 병원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걸.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가장 잘하시지만,


성산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였다.


생활습관, 식습관, 사소한 변화까지 병원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내가 더 많이 관찰하고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성산이의 행복은 장난감에

성산이가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되, 그 ‘최대한’이 성산이의 행복을 해치지 않게.


그게 우리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돌봄의 형태가 변해도 사랑의 본질은 여전히 같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귀를 닦아주고 털을 말려준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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