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kg 보더콜리, 이 정도면 평범하다고요~
시애틀의 펫 스토어에서이다. 마음에 쏙 드는 목줄을 발견했다. 한들이에게는 큰 사이즈 밖에 없어서 더 작은 사이즈가 있는지 물어 보고, 직원이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은 큰 개들 용품도 다양하고 많네~'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제품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펫말을 보니 'Normal Dog Zone'이라고 쓰여 있었다.
'노말 독? 노말 독이라고? 그러고 보니 소형견 용품은 어디에 있지? 못 봤네..' 하고 찾아보니 정말 그 큰 매장 한쪽에 작게 구성된 코너가 있었다. 거기엔 'Small Dog Zone'이란 펫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구성의 크기가 좀 많이 작았다. 한국은 반대의 상황인데, 확실히 북미에는 큰 강아지들을 더 많이 반려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구역의 크기야 수요에 비래하는 것이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러나 우리 강아지가 '큰 개'가 아니라 'Normal Dog'이라는 게 좀 감격스러웠다. 한국에선 사이즈로 차별 받는 일이 많고, 사이즈 때문에 안 좋은 시선이나 욕을 먹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나보다. 우리나라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분류한 성견의 기준은 [소형견: ~10kg / 중형견: 10kg~25kg / 대형견: 25kg~]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실정은 그렇지 않다. 애견 카페나 강아지 관련 시설들을 이용할 때, 소형견은 보통 작은 말티즈나 미니 푸들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비글이나 비숑은 분명 소형견인데, 중형견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형견인 한들이는 한국에서 '대형견' 취급을 받는다. 그저 크기가 크다는 건 괜찮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제시된 기준을 무시한 채, 개인의 (마음 속)시각적 기준으로 크기를 나누고 추가금을 받는 건 불합리하다.
한국에서 대형견으로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중, 대형견을 반려한다는 것은 일단 크기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병원비는 물론이거니와 카페나 맘껏 뛰놀 운동장을 갈 때도 소형견의 2배 이상의 돈이 든다. 게다가 중, 대형견은 받지 않는 곳이 허다하기 때문에 특수한 곳을 찾아 가야 하고, 그런 곳은 또 비싸다. 뜨거운 태양볕을 막아줄 여름 쿨티를 살 때도, 추운 겨울 실외배변을 위한 패딩 조끼를 살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차라리 돈을 지불할테니 이 애들에 맞는 사이즈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맘에 드는 물건을 찾았을 때 사이즈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그저 크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적 시선과 차별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큰 개 = 무는 개 = 무서운 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산책 시 잘 보시라. 사람이나 다른 개를 보고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짖는 쪽은 보통 어느 쪽인지. 주인과 차분히 걷고 있는 개가 사람을 공격할 것인가? 사람을 보고 몸을 앞세우며 짖는 개가 공격할 것 같은가? 이건 편 나누기가 아니다.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큰 개가 물거라고 생각하며, 혐오적 발언을 하는 그 행동이 잘못된 사실임을 말하는 거다. 공격성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개의 행동과 주인의 태도에 따른 문제이다.
왜? 우리 개가 짖길 했습니까? 달려들길 했습니까?
차분히, 그리고 조용히 길을 걷는데 왜 욕을 먹어야 하죠?
산책을 하다 짖는 개를 만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짖는 개'가 아니라 '크기가 큰' 한들이에게 쏠린다. 당연히 큰 개가 짖었을 거란 시선들에 나나 한들이나 억울함이 가득하다. 이런 오해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한들이 교육에 힘썼다. 한 번은 한들이가 어릴 때, 아파트에서 마구 짖으며 오는 개가 있었다. 한들이를 한쪽에 걷게 하며 잘 컨트롤 하려 했는데, 그 주인은 짖는 자기 개를 조용히 시키기는 커녕 자동줄을 길-게 늘린 채로 우리 가까이로 다가 왔다. 좁은 산책로에서 피할 수 없던 한들이는 극도의 불안함을 느끼다가, 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멍!(가까이 오지마!)'하고 같이 짖었다. 나는 속으로 때는 이때다 싶었다. 한들이를 그자리에서 호되게 혼냈다. "누~가~ 아파트에서 시끄럽게 짖어!! 어???!!! 누가~ 예의 없게 짖고 그래~~!!!" 그렇다. 불안감이 극에 달한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표현한 한들이에겐 미안했지만, 그 아저씨 들으라고 진짜 무섭게 소리 질렀다.
당신, 지금 엄청 예의 없는 행동을 한 겁니다!
('라고 차라리 직접 말을 할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을 한다고 알까? 혹여 싸움이 나면 어쩌나?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 불안해 할 한들이를 생각하면 그냥 모른 척 지나깔까? 매번 이럴 때 어떤 태도를 취할지 늘 고민이 된다. 그런데 이런 고민에 어물쩡하는 그 순간이 한들이를 더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닌지도 걱정이다. 한들이는 짖고 다가오는 상대들이 매우 불편하며, 두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내 개를 잘 지키는 것, 지켜줄 거라는 안심과 확신을 주는 게 보호자의 가장 큰 의무이며, 신뢰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 개가 더 차분하고 안정적인 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처음 봤을때 진짜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쁜 주인이 있을 뿐이다. 한 동물을 반려하겠다고 가족으로 맞이했으면,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 그것은 비단 먹는 것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반려 동물의 건강에도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특히 강아지는 산책을 해야 하는 반려 동물이다.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주인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사회적으로 생활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회화 교육은 당연하다. 산책 시 지켜야할 기본 예절을 보호자는 가르치고, 개는 배워야 한다. 공동 주택에 거주한다면 집안에서도 짖지 않게 교육해야 한다. 이런 책임감을 이행하지 않는 주인이 나쁜 주인이다.
좋은 주인, 책임을 다하는 주인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지금도 산책은 매일의 작은 훈련이며, 우리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상이다. 하지만 잘해도 큰 개라서 욕을 먹는 상황에 산책은 늘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다. 그러다가 북미에 오자 이런 스트레스가 모두 날라갔다. 여기에서 우리 개는 'Normal Dog'이기 때문이다. 문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모두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준다. 그리고 문제 행동이 있는 경우는 교육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이다. 배우면 된다.
노말 독인 한들이와 스냅이에 대한 인사말은 "Hi, 큐티~"이었고, 핏불이나 도베르만 같은 친구들의 인사말은 "Hello, 핸썸~"이었다. 편견없는 사람들의 시선에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