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눈물 버튼
할머니 뒷집은 백산댁 할머니 집이었고 백산댁 손녀 지애는 나랑 동갑이었다. 방학에 가끔 함께 놀았는데 나는 돌을 직접 골라하는 빤돌받기, 깨진 장독과 흙을 빻으며 하는 소꿉놀이, 개울에 발 담그고 개구리 구경하기, 민화투 치기 등등이 재밌었다. 윗동네 살던 지애가 백산댁 할머니 집에 왔다 하면 나는 놀자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지애는 다음 학기 문제집을 팔에 끼고 왔는데 그 모습이 내 눈엔 신기했다.
강수연 보조개를 가진 잘 웃던 지애는 나중에 들으니 회계학을 전공하고 미국 연수를 다녀와 직장 다니다 일찍 결혼하여 아이도 둘 낳았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미혼이었는데 뭔가 졌다는 기분과 동시에 역시 지애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어가니 동네 소식은 들을 일이 없고 기억 속에서 할머니 동네와 그곳의 일들은 세트장 속 드라마처럼 그때 그대로 멈춰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부모님과 시골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애는 아이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자랑이던 딸의 죽음 후 시들하게 살던 그 어머니는 재작년 돌아가셔서 지애 아버지 홀로 고향 근처 작은 아파트에 살고 계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문제집을 옆구리에 끼고 우리 할머니집 마당을 들어서며 웃던 보조개 핀 지애 얼굴이 떠오르며 그녀의 삶이 안타깝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불쑥 “내는 지애 생각하면~니 어릴 때 느그 엄마 수술한다꼬 그 어린 니를 맡기고 우리가 안 갔나? ”
“나중에 들으니까~그때 니가 하도 울음을 안 그치니까 우야노 싶어가 할매가 니 안고 백산댁을 갔는가 봐 백산댁이 안아봐도 니가 안그치이 지애 엄마가 ‘내 젖 함 물리볼까예?‘ 하미 받아가 젖을 물맀다카대? 그 얘길 나중에 듣고 얼마나 고마운지 내도록 생각나는기라.
딸도 그래 가뿌고 영감할마이 둘이 산다카이 그때 니 젖물리준거 고맙다카미 밥 한번 살라켔는데 인자 가뿌맀다네? “ 하며 흐흐하시는데 눈이 슬프고 스륵 눈물이 얼른 맺힌다.
아빠는 그 시절 당신 자식이 엄마 찾느라 울었단 얘기를 듣고 다급함에 그리 떼어 놓은 어린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겹쳐 눈물이 맺혀 있나 보다.
난 나대로 그런 아빠 마음이 아파서 쿡 눈물이 찬다. 나는 기억도 못하는 그 일을 그 자식이 지금 50이 다 되었는데도 아빠 가슴에 얹혀 있었다는 게 슬퍼졌다. 다 같이 울적해지니 안 되겠다 얼른 바꾸자 싶어서 난 어린아이 떼쓰는 소리로 말해본다. ”나를 젖동냥을 시켰어어~내가 심청이야아?” 하니 아빠도 금세 흐흐 웃으며 셋이 모두 웃었다.
다들 자기만의 매듭에서 울고 맺히고 추억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