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내가 미안했다고 지금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맞겠지만 아빠아빠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아빠는 올해 일흔여덟이시다.
아빠는 늘 '남 먼저'가 생활이셨다. 사진 명소에서 기 다려 마침내 차례가 되어 사진 위치로 향하면 가서 서기도 전에 "거기 됐다 거기 서라" 하시고는 셔터를 누르신다.
그리고는 "됐다 됐다 얼른 비키 줘라~" 하신다.
명소의 정면 아닌 측면 샷만 찍는 것이다.
한참 지난 어느 날 문득 억울해져 "아빠는 남들 폐 안 끼치느라 우리 가족한테 너무 폐 끼치는 거 아냐? " 하 니 빙긋 웃으시며 그런 것 같다 하셨다.
그런 아빠지만 이제 나이 드셨으니 당신 먼저 챙기셨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당신이 수고를 감당하려 하실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
차로 20분 거리 자식이 가면 되는데
"내는 어차피 시간 많으니까 운동 삼아 갖다 줄게! 괜히 차 움직이지 마라~기름 아끼라~" 하고 지하철을 타 고 오신다.
가져오신 봉지에 담긴 것들은 엄마가 만든 경상도식 육개장, 토종닭 삼계탕 등의 음식이기도 하고 약국에 서 산 상비약들이기도 하고 또 누가 주었는데 안 쓰신 다며 담은 립밤, 샤워젤 등이기도 하다.
들고 오신 짐이 무거운 날은 아빠의 고집이 또 미워진 다.
아빠는 신발도 안 벗고 현관에 닿은 거실 끝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시거나 어떤 때는 들어오지도 않고 가신다.
그럴 때는 ‘성격 참 이상하다 그렇게 가면 딸 마음이 좋나?‘ 섭섭했다가
또 어떤 때는 '그래 아빠 마음 편한 게 최고지 뭐' 싶어 아파트 정문에서 물건만 받아 "조심해서 가세요~"하 고 들어온다. 누가 봤다면 정 없어 보이겠지만 그게 아 빠의 방식이니까
한 번은 아빠가 오셨는데 나도 마침 나가려던 참이라 지하철 역에 내려드리겠다고 했다.
아빠는 "됐다!" 하며 바로 거절하셨는데, "가는 길이라고요 타세요" 하자 마지못해 타셨다.
지하철역 거의 다 왔을 때 우회전하고 50미터쯤 가면 역 4번 출구였다. 우회전하면 곧바로 횡단보도가 있는 데 아빠는 거기서 내리겠다 하셨다.
또 배려하시는 건가 싶어 뱃속에서 이글대던 짜증이 말로 퉁명스럽게 뱉어졌다.
“출구 앞에 내려 드릴게요 조금만 계세요 어차피 지나간다니까요!"
아빠는 별말 없이 앉아 계시다가 차를 멈추자 내리셨 다. 쏘아붙인 것이 맘에 걸려 “조심해서 가세요 아빠~
" 다정하게 말했고 아빠도 "응 가라~"하고 문을 닫으셨다.
나는 내가 옳았고 아빠가 너무했다고 쭉 생각했다.
몇 개월 후 또 내려드리게 됐는데 이번에도 횡단보도에서 내려 달라 하셨다.
화난 목소리로 들리지 않길 바라며 "왜요 가는 길인데 4번 출구 바로 앞에서 내리세요" 하자,
“으응 내가 다리가 아파가~ 길 건너가 엘리베이터 있는 3번 출구로 갈라꼬"
아.... 나는 아빠가 계단이 자신 없을 만큼 약해지신 것도 모르고 계단뿐인 4번 출구로 가시라고 그렇게 번번이 화를 냈던 거였다.
내가 굳이 4번 출구에 내려 드린 날에도 50미터 되돌 아 걸어오셔서 길을 건너 3번 출구로 가셨다고....
가슴이 쿡쿡 쑤신다.
나는 아빠가 세상에 안 계실 때 그날의 퉁명스럽던 내 말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4번 출구에서 되돌아 횡 단보도를 향해 걷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며 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