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지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협소한 생각
3.
주변 사람들에게 집을 살 거라고 하자, 대부분은 내가 당연히 아파트를 살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시세가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길래, 구산동에 있는 투룸은 대충 2억 언저리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렇게 싼 아파트냐 있냐고 되물어오는 식이었다. 아니, 아파트말고 빌라… 그들은 바로 “왜 빌라를 사려고 하냐”고 물었다. 재산 가치로 볼 때나, 생활여건으로 볼 때나 아파트가 가장 낫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내가 모를리 없었다.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은평구만해도 서울에서는 집값이 그나마 저렴한 지역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아파트 매매시세는 제일 저렴한 쪽도 3억 5천만원을 넘어갔다. 내 입장에서 그런 아파트를 사려면 2억 5천만원은 대출을 받아야했다. 다시 금융계산기 어플로 계산을 해보면 2억 5천만원을 금리 3%에 30년 원리금균등분할상환으로 대출받을 경우, 나는 매달 1백만원 정도의 돈을 내야했다. 그럼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너가 지금 내는 월세를 합쳐보면 어떠냐고. 그러니까 아파트를 사서 엄마와 같이 살면서 매달 1백만원을 내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아니, 나는 집을 나와서 혼자 살고 싶다니까. 그럴려면 나도 월세를 내야한다니까. 물론 현명한 사람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언제나 현명한 선택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을 아파트에서 보냈다면, 나 역시 내 첫 집을 아파트로 선택했을 것이다. 아파트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편리함과 쾌적함을 아파트의 장점으로 꼽는다. 그런데 나한테 아파트는 편리함과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해 귀찮은 일이 많은 곳이다. 쓰레기를 언제 어떻게 버리라는 방송이 나오고,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각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게 너무 귀찮은 일처럼 보였다. 특히 관리사무소에서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라며 내보내는 방송이 싫었다. 아파트에 사는 여자친구의 집에서 주말 낮 동안 빈둥거리고 있을 때였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그 방송에 깼다. 눈을 감은 채 방송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는데, 어찌나 말이 많은지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그런 상황을 여러번 겪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파트 생활자가 내야하는 ‘관리비’에 대해 아파트 생활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파트 생활자들은 ‘관리비’를 당연히 내야하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당연히 내야하는 돈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도 상당한 관리비를 내고 있다. ‘관리비’란 주변 생활환경을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비용으로 환산해 내는 돈이다. 그리고 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공동주거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관리비를 안 내면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 만약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돈을 들여서 세콤을 설치해 보안을 유지하고, 직접 정원을 관리해야 하고, 고칠 곳이 있으면 직접 고치거나 사람을 불러야 할 것이다. 아파트 관리비는 이런 비용을 여러 사람이 함께 부담하는 구조에서 나온 항목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관리비를 장기 체납할 경우 퇴거명령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다소 난감해 보였다. 만약 장기체납자가 세입자라면 모르겠다. 어차피 자기 집이 아니니까, 돈을 못 내면 나가야하는 거다. 그런데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도 퇴거명령을 받을 수 있다니… 내가 관리비를 안내서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기는 것까지는 그리 난감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선택이니까. 그런데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내가 구입한 집인데도 나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주변의 아파트 생활자들은 “관리비는 당연히 내야하는 돈이니까”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파트는 진짜 내 집인 걸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회사에서 잘리고, 은행 저축도 다 까먹은 상황에서 그나마 집 한채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전기세와 수도세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전기와 수도도 다 끊겼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는 그렇게 안심할 수 없는 공간이란 이야기다. 관리비를 장기 체납하면 퇴거당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진짜 자기 집을 산 걸까? 아파트에 살면서 내 의지에 반해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산 게 아닐까? 또 그런 자유를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자유를 산 게 아닐까? 그럼 그건 집을 산 건가? 그 아파트는 내 집인 건가?
나의 개념에 있는 진정한 ‘내 집’이란 극단적으로 말해서 ‘고독사’가 가능한 집이다. 전기도 끊기고, 수도가 끊기더라도 나만 아무렇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집. 그래서 그 공간에 웅크리고 살다가 누구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 집. 누군가가 찾아와 관리비를 내라고 독촉하지도 않고, 반상회에 나오라고 안내문을 전하지도 않고,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뭐라하지도 않는 집이다. 내가 원하면 원하는대로 내 마음껏 내가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수 있는 집일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대단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협소한 생각이다. 또 빌라라고 해서 그런 삶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빌라도 귀찮은 일이 많은 주거공간이다. 주차공간이 협소하다보니, 다른 이웃의 차가 나갈 때 내 차를 빼줘야 하는 일이 많다. 관리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적게는 1만원에서 3만원 정도의 빌라 공동 청소비를 낸다. 또 이러한 규칙을 정하기 위한 반상회도 있다. 하지만 수백 세대가 하나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아파트에 비해서는 귀찮음의 정도가 덜한 편이다. 일단 전체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스피커가 없다.) 나는 이게 정말 싫다.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의 생활규칙에 따라왔다면, 갖지 않았을 거부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