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길에는 수많은 전단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전단지 중 하나가 ‘신축빌라’ 분양 전단지다. 전단지들이 보여주는 빌라들은 정말 놀랍다. 역세권에 위치해 있으며 ‘왕테라스’를 가진데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인데 집값은 2억이 채 안된다. 물론 거짓말이다. 신축빌라를 전문으로 분양하는 업체들은 이런 전단지로 일단 사람들을 낚는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면 그의 집으로 가서 차에 사람을 태운 후 그가 원하는 동네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보는 집 중에 전단지에 적힌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곳은 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전단지를 보고 분양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의 차에 함께 올라탔다.
A분양업체의 사람들을 만난 건 내가 오피스텔로 이사한 지 약 일주일 후였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직함은 ‘과장’. 과장님들은 매우 친절했다. 내 어머니에게는 ‘어머님’이라 부르고 나에게는 사장님이라 불렀다. 그들이 처음 보여준 집은 갈현동 마을공원 주변의 신축빌라였다. 가격은 1억 7천만원. 그들은 여기서 지하철역이랑 걸어서 5분 정도라고 했지만, 나는 6년 전 그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다. 사실 10분보다 더 많이 걸린다. 과장님들은 그 주변에 위치한 다른 신축빌라들로 우리를 안내했다. 은평구에는 정말 많은 신축빌라들이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꽤 멀고, 언덕배기에 위치한 그 집들의 시세는 대부분 1억 7천만원에서 1억 8천만원 사이를 오갔다. 가격은 좋았지만, 나는 여전히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과장님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여기 나중에 월세로 내놔도 70만원은 받을 수 있어요. 저희가 신축빌라만 파는 게 아니라, 월세도 중개하거든요? 나중에 저한테 말씀만 하세요. 제가 70만원 꼭 받아드릴게요.”
과장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나를 설득하기에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월세를 낸다고 해도 지하철역까지 10분 이상을 걸어야 하고, 매일 저녁 퇴근길에 높은 언덕을 올라야 하는 이 집에 70만원 씩이나 월세를 낼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과장님들은 굴하지 않고 또 다른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많은 집을 봤지만, 내 마음에 딱드는 집을 찾는 건 어려웠다. 역시 또 내 표정을 읽은 과장님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애썼다.
“저희 직원 중 하나도 얼마전에 이 빌라 건물에서 집 한 채를 샀어요.”
“아, 어머님. 내가 여기 건축주한테 우리 어머님 이사비용은 빼달라고 애써볼게요.”
중개업자들이 말하는 ‘이사비용’은 어느 정도의 돈일까? 신축빌라 분양 전단지에는 종종 ‘이사비 지원’이란 문구가 쓰여있었다. 말이 ‘이사비용’이지 집값을 좀 깎아주겠다는 얘기다. 그들이 말하는 이사비용은 100만원에서 약 200만원 정도다. 자기들이 이 집에 매긴 가격에서 그 정도는 ‘네고’할 여지를 남겨둔 거다.
‘빌라관광’을 통해 본 집이 5채를 넘어갈 때쯤, 새로운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신축빌라의 분양사무실에서 만나는 ‘실장님’들이다. 그들은 아직 분양이 되지 않은 집 하나를 꾸며놓고 집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안내한다. 일단 사무실에 들어가면 실장님들은 ‘마실 것’을 권했다. 믹스커피, 녹차, 물, 주스등이 있었다. 음료를 간단히 마시면서 집 내부를 살펴보는 동안 실장님들은 집의 장점들을 설명했다. 주변환경, 건축에 쓰인 자재, 옵션으로 설치된 조명과 싱크대, 붙박이 에어콘 등등. 내가 만난 실장님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중년 여성이 대부분이었고, 가끔은 30대 초중반의 여성도 있었다. 실장님들은 특히 내 어머니에게 살가웠다. 30대 중반으로 보였던 한 여성 실장님은 집을 보러 찾아오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딸’처럼 연기하는 듯 보였다.
“어머니,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
“아, 우리 어머니 부엌 쪽에 창문 있는 걸 원하시는 구나.”
“여기 바로 위가 옥상이라서, 어머니가 고추말리시기에도 참 좋아.”
나는 그런 ‘친근한 반말’이 살짝 신경쓰였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아가씨가 참 얼굴도 이쁘고, 싹싹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실장님들을 볼 때마다 더 불안해졌다.
신축빌라가 아닌, 누군가가 살 던 집을 보러다닐 때 만나게 되는 사람은 크게 2종류다.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 간혹 여기서 1명이 더 늘어나는데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다. 이때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은 부동산 중개인이다. 집주인은 만날 때도 있지만, 안 만날 때가 더 많고, 세입자들은 그 집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사를 준비하는 게 더 바쁜 일이고, 자신의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이 달갑지 않을 거다.
그런데 신축빌라를 보러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다 말이 많다. 빌라관광을 앞장서는 과장님, 분양사무소를 지키는 실장님, 그리고 빌라를 실제 지은 업자까지. 그들은 모두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태도로 말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혹시 내가 호구가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부동산 중개인은 법으로 정해진 요율에 따라 중계수수료를 받는다. 과장님들은 신축빌라를 살 때 좋은 점 중 하나가 그런 중계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장님뿐만 아니라 실장까지 업자와의 사이에서 비밀리에 약속한 수수료를 받을 것이다. (아마도 현금으로?) 그들이 공짜로 일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름값을 써가며 빌라관광을 안내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분양업자들은 그들에게 주는 수수료까지 감안해서 이 집의 가격을 산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축빌라를 살 때 내가 지불하는 집값은 과연 적정한 시세일까? 신축빌라 분양 업계에서는 적정한 시세일지 모른다. 하지만 돈을 쓰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모두 하나로 작당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호구가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정말 호구는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축빌라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