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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17. 2018

누구도 믿지 못하는 신축빌라 구매계약의 세계

내 편이 없다. 

5.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되어 갈 때쯤, 어머니는 새로운 ‘과장님’을 찾았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먼 친척 아저씨로부터 소개받은 과장님이다. 어머니는 그 과장님도 나와 같은 ‘강씨’ 집안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실제 만난 강과장님이 마음에 들었던 건, 그가 과하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애써서 웃으려 하지 않았고, 일부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내 어머니와 나이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집을 사려고 하는 고객인 나에게 나름의 예의를 지켰을 뿐이다. 또 그는 찾아간 신축빌라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 집 작은방은 바로 옆이 엘레베이터실이에요. 그래서 이 방에서는 소음이 날 수 있어요.” 


“여기는 거실 창문 밖에 고압선이 지나가요. 그래서 전망을 좀 가리는 것 같네요.” 


강과장님은 이런 이야기를 분양사무소 실장님이 멀리 있거나,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나에게만 살짝 이야기했다. 그들 앞에서 집의 단점을 말하는 건, 업계 관행을 어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강과장님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집의 조건이 서로 부합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집을 살 수는 없다는 거였다. 사실 이미 나도 깨닫고 있던 부분이었다. 나에게도 포기해야하는 게 있었다. 적당한 가격으로 역세권이 아닌 위치의 집을 산다면, 나는 그 집의 재산가치를 상당부분 포기해야 했다. 대출을 더 땡겨서 역세권에 위치한 집을 산다면, 매달 더 많은 이자를 내야할테고, 결국 내 생활비의 일부분을 더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돈을 포기해야 하는 일. 그렇다면 어떤 선택이 나을까? 나는 재산가치를 키우고 생활비의 일부분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호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신축빌라의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은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만든 사람의 인건비, 자재비, 이를 마케팅하기 위한 비용, 그 과정에서 또 투입된 인건비, 유통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진율, 그리고 판매자가 남길 수익까지 보태져서 정해지는 게 신축빌라의 가격이다. 이미 누군가가 구매했던 집을 내가 구매하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사실 원래 집주인도 저런 과정에서 나온 가격에 집을 구입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가라앉히려 했다. 하지난 나는  집 가격을 놓고 업자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깎을 수 있을만큼 깎아보기로 했다. 호구가 되어도, 만만한 호구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강과장님과도 10채 가량의 신축빌라를 보았다. 어차피 한 동네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가끔은 강과장님이 보여주는 매물과 앞서 만난 A업체의 과장님들이 보여준 매물이 겹칠 때도 있었다. “다음에 보실 집은 응암역 부근에 있는 곳인데요. 여기는 2억 3천이에요.” 그럼 나는 “혹시 그집 부엌 쪽 바닥이 타일로 마감된 곳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식으로 겹치는 매물들을 지워갔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집을 계약했다. 


구산역과는 도보로 약 5분 가량 걸리는 이 신축빌라는 대로변에서 한 블럭 뒤에 있었다. 100% 일렬 주차가 될 정도로 주차공간이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에 놓인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해야할 정도로 협소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엘레베이터가 있었다. 집의 구조는 반듯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고, 왼쪽은 바로 싱크대다. 싱크대와 이어진 거실을 한 가운데 놓고 왼쪽에는 큰 방, 오른쪽에는 작은 방이 있다. 작은 방에는 작은 베란다가 있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여러 신축빌라를 보면서 “집이 반듯하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아무래도 한 건 물에 쓰리룸 빌라들과 섞어서 집을 만들다보니, 딱 떨어지는 구조의 투룸을 찾기가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거실 창문 밖에는 단독주택이 있었다. 단독 주택 바로 앞에는 대로변과 맞닿은 건물이 있다. 이 단독주택에는 나무가 많았다. 멀리 북한산이 보였다. 평소 식물 가꾸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등산을 즐기는 어머니는 거실 밖의 풍경을 마음에 들어했다. 단, 이 단독주택 자리에 새로운 신축빌라가 세워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창문 밖에는 나무와 산이 아니라 벽이 세워질 것이다.  강과장님은 단독 주택의 위치상 일방통행 도로와 한쪽만 닿아있어서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단독주택 앞에 있는 건물이 이 주택을 사서 건물을 확장할 수도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 나는 이 집의 위치가 좋았다. 구산동 일대에서 살면서 내가 자주가던 수제맥주집과 횟집이 가까웠다. 평소 자주가던 카페도 근방에 있었다. 10분정도 걸어가면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있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재산으로서의 가치도 있었지만, 내가 살고 싶은 집이기도 했다. 


그래도 문제는 역시 집값이다. 이 빌라의 실장님이 말한 집값은 2억2천800만원이었다. 1억 3천 5백만원을 염두하며 집을 사고자 했고, 나중에는 2억이 넘는 집은 사지 말자고 했던, 나는 결국 2억이 훨씬 넘는 집을 마음에 들어한 것이다. 이때 이 집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나도 빌라관광에 지친 상태였다. 이후의 빌라관광에서 이만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여기서 더 집을 보러다니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집을 사기로 했고, 앞서 말한대로 깎을 수 있을만큼 깎기로 했다. 


실장님에게 가격협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장님은 나에게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냐고 말했다. 나는 2억 1천만원을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냥 2억을 이야기했다. 실장님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한 숫자에 정말 놀랐던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실장님이 일부러 더 과하게 놀라는 척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 3,400 정도 빼는 건 모르겠는데, 그렇게는 어렵죠.” 


나는 살짝 웃으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강과장님은 가만히 있었다. 아마 그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에서 어느 쪽의 편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강과장님은 지금까지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에게 수수료를 주는 쪽은 어디까지나 분양업자다. 이 때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협상은 나 혼자 해야할 일이었다. 


“그럼 일단 저희 이사님께 전화를 드려볼게요.” 


실장님이 말한 이사님은 바로 분양업자다. 아니, 분양업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집의 매매가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실장님은 이사님에게 “여기 손님이랑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서, 이사님이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도 믿지 않았다. 실장님의 말은 은연중에 지금 업자가 분양사무소까지 오는 일이 꽤 특별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업자가 와서 계약을 하면서 괜히 생색낸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이사님이 도착했다. 


나이는 50대 중반 혹은 후반정도 되어보이는 여성이었다.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 온화한 느낌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이사님은 바로 돈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어머님이랑 두 분이서 사시려고 하는 거예요?” 

“아니요. 저는 지금 나와살고 있고, 어머니 혼자 사실 집을 사려는 거예요.”


“혼자 사시기에는 딱 좋은 집이죠. 대출은 어느 정도 받으시려고요?”

“한 9천만원 정도요.” 


“저희랑 같이 하는 대출을 도와드리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잘해요. 한 3%대에서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니요. 제가 제 주거래은행에 가서 대출 진행하려고요.” 

“직접 하신다고요?”

“네.” 


이사님의 얼굴에서 살짝 난감한 기색이 보였다. 신축빌라 분양과정에서 대출진행을 맡아주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3년 전, 집을 산 친구는 그때 자신이 직접 한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과장님들 차를 타고 집을 보러다녔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 계약한 후에는 대출진행을 맡은 사람들이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집을 사는 과정에 또 다른 사람들을 끼워넣고 싶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또 쓸데없는 수수료들이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 개인정보와 내 연봉수준 등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 어머니에게 든든한 아드님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들은 지금 고등학생인데 아직도 어리광을 부린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업자는 숫자를 말했다. 


“2억 2천 800만원에서 800만원 정도 빼는 건 어떻게 한 번 해볼게요.” 


자기가 매매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매매가를 깎는 일이 쉽지 않다는 듯한 식의 말이 이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분양 이전 이 신축빌라의 주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만난 이사님의 남편일 수도 있고, 동업자일 수도 있다. 혹은 이 이사님도 실제 분양업자에게 고용된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일단 800만원을 깎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좀 더 깎을 생각이었다. 분양사무소 실장님은 3,400만원 정도 빼는 걸 생각하고 있었고, 이사님는 800만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2억 2천만원에 내가 이 집을 산다고 해도 나는 호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호구일 망정 만만한 호구는 되고 싶지 않다는 기조에 따라,  나는 그 제의를 덥썩 물지 않았다. “흠…” 나는 여전히 탐탁치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저로서는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또 언젠가는 제가 살지도 모르는 집을 사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진 돈은 별로 없고, 그래서 대출을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일단은 제가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안에서 이 집을 살 때 내야하는 취득세까지 해결했으면 해요.”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때 강과장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강과장님은 업자에게 다가가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분양사무소 내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약 5분이 지났을까? 두 사람이 안좋은 표정으로 나왔다. 강과장님이 나를 향해 말했다. 


“제가 여기 사장님께 조금 더 신경써달라고 했으니까, 이 정도 선에서 계약하시죠.” 


그리고는 이사님이 새로운 숫자를 말했다. 


“우리 강과장님이 사정하시고, 우리 어머니 이사도 하셔야 하니까, 이사비를 빼드리는 정도로 해서 200만원 더 빼드릴게요” 


그리고 이사님는 강과장님을 향해 ‘밉지 않게 꾸짖는 눈짓’을 했다. ‘내가 너 때문에 손해를 봤다’란 식의 제스츄어였고, 그 눈짓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당신이 이겼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나는 그제야 계약서를 쓰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 게임에서 나는 호구이고, 패자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나는 이 과정에서 나름의 시간을 끌었고, 그래서 그들이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숫자를 말하게 했다. 야구에서는 져도 잘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질 것 같은 경기면 감독은 추격조나 신인 투수를 내보낸다. 필승조 투수를 아끼면서 다음 경기의 승리를 기대하는 동시에 신인 투수에게 경험치를 먹이는 것이다. 또 어차피 질 경기라면 상대팀의 불펜투수를 소모시키는 것도 ‘져도 잘 진 경기’의 전략이다. 나는 나름 분양업자의 불펜투수를 소모시켰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와 업자사이에 다음 경기가 없을 뿐이다. 


계약서는 어머니가 들고갔다. 나는 집에 와서 페이스북에 포스팅 하나를 했다. 미리 찍어둔 빌라 내부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그날은 2017년 5월 5일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엄마에게 줄 어버이날 선물로 작은 빌라를 하나 샀다.” 


많은 친구들이 축하의 댓글을 달았다. 선물의 스케일이 남다르다거나, 역시 효자라거나, 이직하더니 월급을 많이 받나보다라는… 일단 집을 사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집을 선택하는 일이 끝났으니 큰 산을 넘은 거였다. 내 오피스텔에 와서 맥주 캔 하나를 땄다.  이제 은행을 가면 되는건가? 대출을 진행하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의 짐을 정리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 또한 내 착각이었다. 

며칠 후 나는 더 큰 장벽을 만났다. 

그 장벽은 바로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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