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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17. 2018

내 집이 아니라 가족의 집을 살 때 생겨나는 일들

꼭 싸우게 될 것이다.

6. 

독립을 결정하면서 나는 담배를 끊었다. 월세로 나가는 50만원의 돈, 거기에 15만원 이상의 관리비까지 내는 상황에서 담배는 너무 큰 사치였다. 회사 근처 병원에서 ‘챔픽스’를 처방받아 먹었다. 금연 계획은 의외로 순탄했다. 챔픽스와 은단으로 담배를 멀리하는 동안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과장님들과 20채 가까운 신축빌라를 보면서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지 않았다. 그런데 집을 계약하고 이틀 후, 나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도저히 그러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그 집을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매매가를 협상하는 동안 나는 분양업자만을 상대하느라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많은 돈을 대출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집의 넓이였다. 방3개에 화장실이 2개에, 앞뒤로 베란다가 있는 현재의 반전세 집에 비하면 훨씬 작은 집이 분명하다. 게다가 집주인이 우리에게 이 집을 2억에 팔테니 살려면 사라고 제안한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훨씬 더 큰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런 판단에는 누나네 가족의 이야기도 있었다. 집 계약을 한 후, 엄마와 함께 집을 보러간 누나는 집이 너무 작다고 평가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나에게는 집을 사겠다는 결심부터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집을 보러다닌 끝에 마음을 다잡고 계약금 5백만원을 걸고 계약서를 썼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고통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누나의 한 마디는 더 큰 고통이었다. 5년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사실 2012년에 이미 나와 어머니는 집을 사려고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반지하에서 탈출하는 동시에 또 이사를 해야하는 불편을 그만 겪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때도 빌라관광을 다녔다. 그리고 그때도 투룸으로 지어진 신축빌라 하나를 계약했다. 그때는 어머니 혼자 살 집을 찾았던 게 아니었다. 투룸이어도 어머니와 함께 살 생각으로 선택했다. 연신내역과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5층 빌라의 5층에 위치한 곳이었다. 주차장은 넓었지만, 엘레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으로 5층을 오르내리는 게 어머니에게는 무리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도 어머니와 나는 합의하에 그 집을 계약했다. 집 가격은 1억 5천 500만원이었는데, 500만원을 깎았다. 계약금으로는 1천 5백만원을 걸었다. 규정에 따라 매매가의 10%를 내야한다길래 그대로 따른 것이다. 


계약서를 쓴 후, 그때 어머니에게 신신당부했던 건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거였다. 계약금을 1천5백만원씩이나 낸 상황에서 다른 집을 더 볼 필요도 없고, 이 집을 사야한다고. 하지만 그때도 어머니는 누나네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입장을 바꿨다. 매형은 왜 이런 집을 1억 5천만원씩이나 주고 사냐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넌 기자라는 애가 왜 이런 판단을 했냐”고 다그쳤다. 그때는 나를 둘러싼 상황을 비관했던 것 같다.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당신들에게 집이 있었다면,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지도 않았겠지. 당신들에게 집이 있었다면, 나는 내가 번 돈으로 내 살집을 내 마음대로 결정했겠지. 당신들에게는 집이 없었고, 어렵게 샀던 집은 빚 때문에 급매로 넘겨야 했고, 그렇게 집을 판 돈으로 빚을 갚았고, 남은 돈으로 월세방을 얻어야 했다. 이후 내가 취직을 한 후 3천5백만원을 대출받아 반지하라도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집을 옮겼던 것이었다. 갑자기 바뀐 어머니의 태도에 그때의 나는 이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매형은 보증금을 더 보태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부동산 중개인과 돌아다니며 나홀로 아파트 한 채를 보고 오셨다. 나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좀 더 넓고 쾌적한 반전세 집으로 옮겼다. 분양업자에게 냈던 1천 5백만원 중에서 5백만원만 돌아왔다. 


5년 후 맞이한 같은 상황에서 나는 5년 전의 기억들을 또 떠올렸다. 어머니에게 짜증과 화를 냈다. 어머니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훨씬 싼 집을 살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지하철에서 너무 멀고, 엘레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빌라를 사는 일이었다. 9천만원을 대출받느냐, 7천만원을 대출받느냐의 차이. 그런데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볼 때 그 집은 너무 낮았다. 이 집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내부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하는데, 그 돈을 들인다고 해서 재산가치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나중에라도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집이었다. 


어머니에게 화를 낸 후, 나는 오피스텔을 나왔다. 밤 12시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숨이 마구 나왔다. 담배가 생각났다. 바로 담배를 샀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홍대에서 타로점집을 운영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택시를 타고 그곳에 갔다. 친구는 복채도 받지 않고 카드를 섞었다. 그러면서 잘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 했지만, 나는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병진아 화부터 내지말고, 그 집은 아무리 생각해도 짐놓고 살려면 답답하다. 

그 돈이면 차라리 여기 이 집을 사자.  투자가치 이 집이 낫고 여려가지로 앞으로 낮다.  

계약금 못받아도 이 집을 산다면 엄마가 집주인에게 좀 깎아달라고 해볼게.


누나도 새집은 좁고, 이 집이 휱씬 낫다고 하고 엄마랑 같은 생각이야.  

한번더 꼼꼼이 생각해보자. 집사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성질 죽이고, 엄마도 가슴 아프다. 

너하고 싶은데로 안되서 미안하다.”


출근 길에 날아온 메시지를 읽다가 또 화가났다. 그래도 바로 전화를 걸어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나는 내 입장을 가다듬어 답장을 썼다. 그러고나니 회사에 도착했다. 


“지금 사는 집도 내가 은행에 감정봐달라고 등기부등본 떼어다가 넣어놨었어. 

일단 보기는 할 건데, 감정가가 너무 낮게 나오면, 그래서 내가 필요한 만큼 돈을 대출을 못 받으면 어차피 살수 없어. 


난 나대로 마음 다잡아 가면서, 어렵게 마음을 먹고 집을 사려고 수없이 계산하고 고민하면서 결정한 건데, 

이런 식으로 또 틀어지는 게 너무 짜증나. 


그래서 더 이상 이런 고민을 하고 싶지가 않은 거야. 

다 짜증나고 피곤하고 그래.” 


어머니는 “능력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나는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 


“난 내 전재산을 쓰는 거야. 그런데 난 아직 결혼도 안했어. 

나는 정말 그 집(원래 살던 집)을 사고 싶지 않아.


지금 난 내 전재산을 다 끌어오고, 거기에 대출 받을 수 있는 돈을 다 끌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왜 내가 살고 싶지도 않은 집을 사야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나중에라도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 

엄마는 지하철역까지 조금 걸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건 매일 출근하지 않는 엄마 입장이야. 

그 집에서 내가 살기 좋았다면, 내가 이렇게 따로 나와 살지도 않았겠지. 거기가 좋은데 왜 나왔겠어. 


내가 그 집(사려고 하는 집)이 비싸도 사려고 했던 건, 그 위치에 그 정도면 나중에라도 내가 살기 괜찮다고 생각한거야. 

지금 엄마가 살고 있는 그 집은 아무리 넓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니야.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집을 사라고 하는 건, 나한테 내 전재산을 버리라는 이야기잖아.”


메시지를 쓰는 동안 나는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살고 싶었다. 모든 걸 놓아버리겠다는 메시지를 함께 이어서 보냈다. 


“나는 그냥 어떤 집도 사지 않을래. 이미 계약한 집을 사겠다고 하면 계속 엄마랑 누나한테 시달릴거니까.

나는 이제 그런 고민을 안고 사는 것도 싫어.


내가 큰 결심을 해서 한 선택인데, 거기에 가족 중 누구도 기분 좋게 응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싫어.

그리고 이런 일이 벌써 두 번째야.


난 나대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밤새 고민하고, 또 괴로워하고 그런다고. 


어쨌든 아무 집도 안 살거니까, 강과장에게 그렇게 엄마가 말해. 나는 그쪽으로부터 어떤 전화도 받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가 먼저 전화해.”


진심이었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또 긴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 이게 다 엄마 잘못이다. 어려운 우리 상황에서 엄마만 생각했어.

엄마도 괴로웠어,.

이 집에서 나가게 되면 그때는 그냥 경기도 바깥으로 가서 살든지 할게.


아무튼 우리 아들 건강챙기고, 마음 다스리자. 

계약금은 피같은 돈이지만, 그냥 도둑맞았다고 생각할게.


누나도 동생 힘빠지라고 그런 이야기한 게 아니라, 좀 넓은 집에 살면 좋겠다고 한 거야.

아무튼 엄마도 새롭게 마음 먹을게. 강과장한테는 내가 전화할테니까, 너는 미안해할 필요 없다. “ 


정말 나는 그날 더 이상 집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난 다시 계산을 했다. 어머니는 은평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원당 정도로 이사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그곳에서 또 반전세나 월세를 구하면 될 거다. 그러면 매형이 월세를 지원할테고, 나는 원래대로 생활비를 드리면 되겠지. 이사준비를 위해 나름 모아둔 현금이 조금 있었다. 나는 그냥 이 돈으로 오늘 술이나 왕창 마실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렸다. 조기를 넣고 끓인 찌개, 두부조림, 고추튀김 등이 있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야구중계를 틀어놓고 밥을 먹었다. 밥상을 치운 후 나는 다시 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는 남한테 어떻게 보이는가를 너무 신경써.”


어머니는 내 말을 인정했다. 


“응, 엄마는 그런 게 좀 있어.”


나는 다시 내 입장을 이야기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리처럼 가진 게 별로 없으면 남한테 어떻게 보이는가만 신경쓰면서 살 수 없어. 그것도 신경쓰면서 갖고 있는 돈도 지켜야 해. 그 두가지를 다 해야해. 우리가 계약한 집은 그런 상황에서 나온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야. 엄마는 그 작은 집이 무슨 재산 가치가 있냐고 하지만, 이미 세상이 그래. 엄마가 생각하는 방식처럼, 얼마나 넓은가로만 집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아. 이제 자기 가족이랑 사는 사람은 예전보다 많이 없어. 앞으로도 없어질 거야. 혼자 살거나, 둘이 살거나 하는 사람이 많아. 그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직장까지 빨리 갈 수 있는 지하철이 필요해. 그래서 역세권에 있는 신축빌라를 선택했던 거야. 주차장도 넓고, 엘레베이터도 있는 집이어야 해. CCTV도 달려있고, 전체 현관에 보안시설도 있어야 해. 그런데 엄마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넓기만 하고 나머지가 하나도 없어. 그 집은 여기보다 작지만, 나중에 집을 팔거나 월세를 내놓을 때 훨씬 더 유리해.”


어머니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이 집을 사면, 그리고 거기에 엄마가 살면 엄마가 나한테 돈을 벌어다 주는 거야. 엄마와 내가 가족이고, 엄마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엄마한테 돈을 안 쓸 수가 없어. 매달 내가 버는 돈의 일정부분은 엄마한테 줘야만 해. 그런데 이 계획으로 보면 그 돈으로 내가 집을 사는 거야. 엄마한테 줄 돈으로 매달 대출금이랑 이자를 함께 갚아가는 거니까.” 


어머니는 이 말을 수긍하면서 말했다. 


“그래, 누나가 계속 생활비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러면 그 생활비에 노령연금 나오는 거랑, 엄마가 구청에서 하는 노인 일자리 하는 거랑 하면 살 수 있지.”


어머니는 그래도 주저했다. 어머니의 눈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분명 낡았지만, 분명 넓은 집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쌓아온 살림들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집으로 가야할 경우, 이 살림들의 상당수를 버려야 할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건 당연하다. 버릴 건 버리고, 쓸 만한 것도 안 쓰는 건 버려야만 새로운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증산동 아저씨한테 한 번 더 물어보자.” 


어머니가 말한 ‘증산동 아저씨’는 우리 가족에게 ‘강과장님’을 소개해 준 친척 아저씨다. 오랫동안 부동산 업계에서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분이다. 옛날에 아버지가 첫 집을 살 때도 업자와 협상할 때 함께 가서 매매가를 깎아주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아저씨의 답은 명쾌했다. 


“집이 작더라도, 역세권에 엘레베이터 있는 집을 사야죠. 병진이도 나중에 결혼하면 아파트로 가야할거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라도 팔던지 해야죠. 팔리는 집을 살려면 방 2개 밖에 안돼도 역세권에 엘레베이터 있어야지.”


아저씨는 나한테 한 번더 말했다. 


“병진아, 집을 사려면 올해는 꼭 사야해. 작년에 샀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렇게 된 거 올해라도 꼭 사야해.”


어머니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바로 버려야 할 물건들을 꺼내 쓰레기장으로 밀어냈다. 어머니가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사실 다른 사람이 보면 우스운 이야기일 지 모른다. 고작 작은 집 하나를 사면서 뭔 이리 갈등이 많은지. 그런데 사실 나한테는 꽤 익숙한 과정이었다. 5년 전 처음 집을 사려할 때도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미 22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집을 샀을 때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7년 후, 다시 그 집에서 나올 때도 있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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