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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드디어 나는 내 공간을 찾았다. 응암역 주변에 위치한 오피스텔이었다. 나름 계획으로는 구파발역이 유력했지만, 응암역으로 선회한 이유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매일 부동산 중개어플을 뒤져보던 중 아직 준공도 받지 않은 신축 오피스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곳은 지하주차장도 있었고, 가장 작은 집도 구파발역 주변 오피스텔의 평균 넓이보다 넓었다. 게다가 개인에게 분양하는 오피스텔이 아니라, 법인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집주인과 갈등을 빚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월세는 더 비쌌다. 기본형 오피스텔은 1천만원에 50만원. 그보다 조금 더 넓은 분리형은 1천만원에 60만원이었다. 기본형을 선택하려 했으나 분리형을 본 나는 결국 분리형을 선택하고 말았다. 보증금을 2천만원으로 올려 월세를 55만원으로 낮출 계획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집을 보여준 법인 측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 각 층에 분리형은 4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중 양쪽에 있는 집의 경우는 창밖 풍경의 한 쪽이 벽에 막혀 있었다. 법인 측 직원은 이 양쪽 집은 5만원씩 월세를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걸 덥썩 물었다. 벽이 왼쪽에 있는게 나은지, 오른쪽에 있는 게 나은지를 살펴본 후 나는 왼쪽에 벽이 있는 집을 선택했다. 그렇게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의 계약이 성사됐다. 나이 마흔에 갖게 된 나만의 공간이었다.
오피스텔 이사를 끝내고 한동안은 내 공간을 꾸미는 일에 집중했다. 매일 이케아 사이트를 뒤져가며 어떤 소품이 어울릴지를 살폈다가, 쉬는 날 매장으로 달려가 구입해왔다. 처음 갖게 된 내 공간이다보니, 욕심은 끝이 없었다. 대형마트를 갈 때면 꼭 가구코너나 생활용품 코너를 살피게 됐고, 결국 내 손에는 몇 가지의 물건들이 들려있곤 했다. 매트리스와 책꽂이의 위치를 여러차례에 걸쳐 바꾸기도 했다. 어차피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생각해오던 내 공간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 사이 엄마는 빌라관광을 다녔다. ‘빌라관광’은 빌라 전문 중개인들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을 자동차에 태워 돌아다니는 걸 말한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빌라관광을 다닌 엄마는 매일 저녁 전화로 어떤 집을 봤는지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 가운데 관심이 있는 집을 선택해 보러다녔다. 그 사이 내가 염두하고 있던 집의 가격은 1억 3천 5백만원에서 1억 7천만원까지 상승했다.
내가 집을 사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1억 3천 5백만원짜리 집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지하철역에 가깝기는 하지만, 엘레베이터도 있고, 주차공간도 넓었지만, 집이 너무 좁았다. ‘부엌이나 다름없는 거실’이라고 했던 엄마의 말은 사실 거실이 없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 집의 원래 주인은 엄마 보다 나이가 더 많은 할머니였다. 자식들이 있는 캐나다로 가기 위해 이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 혼자 살기에는 딱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 생각에도 누군가 혼자 살기에는 좋은 집이었다. 하지만 가치가 있는 재산이 될 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사는 곳인 동시에 언젠가 내가 살지 모르는 집이며 유사시에 처분할 수 있는 집을 찾고 싶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재산’으로서의 집이다. 이 집을 사면서 쓸 돈은 (매형의 도움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가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탰던 돈과 그 이후에 내가 모았던 돈, 그리고 내가 앞으로 갚아야할 돈이 포함된 것이었다. 유사시에 더 이상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경우, 내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회사가 없어지거나 할 경우, 언제든 처분이 가능한 집이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월세 세입자를 둘 수 있는 집이어야 했다. 그래서 어차피 큰 집을 사지 못할 거라면, 작은 집이어도 매력적인 집을 사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세권이어야 했고, 주차공간이 나름 넓은 곳이어야 했고, 엘레베이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빌라는 작은 빌라여도 비쌌다. 처음부터 ‘투룸 빌라’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나중에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주더라도 역세권의 ‘투룸’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역세권의 깔끔한 투룸’이 더 가치가 있어보였고, ‘깔끔함’을 위해 주로 신축빌라를 보러 다녔다. 만약 구옥빌라를 산다면, 적당한 가격에서 더 넓은 집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옥빌라의 대부분은 주차공간이 없다. 엘레베이터는 당연히 없다. 또 그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빌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다시 해야한다. 구옥빌라가 더 넓고 싸다고 해서 더 싼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역세권의 신축빌라는 작은 집이어도 비쌌다. 빌라관광을 다니면서 나는 내가 말도 안되는 계산을 했다는 걸 알게됐다. 나는 말도 안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셈이었다. 너는 너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할 것. 그러면서 엄마의 공간을 찾을 것. 그런데 그 집은 재산가치가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나에게는 돈이 얼마 없다는 사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돈과 내가 사고 싶은 집의 거리는 넓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돈의 영역에서 역세권, 투룸, 넓직한 거실, 엘레베이터, 주차공간 이란 다섯가지 조건을 다 가진 집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어떤 집은 다 좋았지만, 역세권을 벗어나 있었다. 또 어떤 집은 다 좋은데 엘레베이터 없는 5층이었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돈의 영역을 조금씩 높여갈 수 밖에 없었다. 어느덧 나는 2억만 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