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병진 Aug 17. 2018

한 가족이 두 집에 월세를 내는 선택을 했다



1.

2017년 2월의 어느 날. 나는 독립을 결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어머니와 나는 방 3개와 화장실 2개, 주방 공간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앞 뒤로 넓은 베란다가 있는 빌라에 살았다. 보증금 8천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는 반전세였다. 월세는 매형이 내주고 있었고(매형은 어머니에게 생활비도 드렸다), 나는 어머니에게 한 달에 40만원의 생활비를 드렸다. 매형의 도움 덕분에 내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집을 나가고 싶었다.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나는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자고 싶은 만큼 잔 후에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집안일을 시작했고, 그런 부산스러운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곤 했다. 어떤 때에는 누나와 매형, 조카가 금요일 저녁에 와서 일요일까지 시간을 보내다 갔다. 누나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거의 매주 집에 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주말이라도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었던 나는 주말마다 잠에서 덜 깬 채 일어나 바쁘게 아침식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가 카페를 전전했다. 두 번째 이유는 부산에 살며 종종 서울로 출장을 오는 여자친구였다. 결혼을 했다면, 우리 만의 공간이 있었겠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를 않아 여자친구가 올 때마다 우리는 호텔에 갔다. 나는 내가 혼자 산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호텔비도 아끼고, 식사도 집에서 해먹으면 돈을 아낄 수 있고, 여자친구는 자신의 옷가지와 여러 소지품들을 내 공간에 보관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마지막 이유는 나이였다. 이제 마흔. 남은 날이 길어야 60년인데, 하루라도 젊을 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다.


문제는 돈과 어머니였다.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나는 내 공간에 대한 월세를 내야했다. 어머니와 내가 살던 집은 그해 여름에 계약 종료였다. 어머니도 혼자 살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아마 그 집도 월세를 내야 할 것이다. 나는 내 공간과 어머니의 공간 양쪽에서 월세를 낸다는 게 낭비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름 합리적으로 계산하려 애썼다. 매형이 지금처럼 월세를 내준다면, 그리고 지금처럼 내가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리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 월세는 그동안 주말마다 밖에 돌아다니면서 썼던 돈, 그리고 여자친구가 서울에 올 때 썼던 호텔비와 외식비들을 아끼면 충당되지 않을까? 주말에 카페에 가봤자, 돈을 얼마나 썼겠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집 밖에 나가면 카페만 가는 게 아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사 먹는다. 그리고 다시 카페를 가거나, 서점을 가서 책 구경을 한다. 그 정도로 하고 집에 가면 좋겠지만, 아직 집에는 누나네 가족이 있다. 그러면 이곳저곳 전화를 돌려본다. 그렇게 만나게 된 친구가 있으면 술을 마시게 되는데, 내가 불러냈으니 내가 술값을 낼 때도 많았다. 20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누나 가족은 더 자주 우리 집을 찾았고, 그때부터 나는 주말마다 그런. 생활을 했었다.


나름의 계산을 한 후, 어머니에게 나가 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심지어 어머니는 그동안 돈을 모아놓은 게 조금 있다고까지 말했다. 보증금에 보태줄 테니, 집을 잘 찾아보라고. 그냥 싼 집 말고 좀 괜찮은 집으로 찾으라고. 어머니 입장에서는 마흔 살이 되는 아들이 애인과 함께 있으면서 아기라도 빨리 생기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내가 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마포구에 있다. 독립을 결심했다면 회사가 있는 동네에 공간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은평구를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일단 혼자 살게 될 어머니가 걱정스러웠다. 떨어져 살아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유사시에도 출동하기가 좋을 것 같았다. 또 이 동네에는 친한 친구들이 많았다. 사실 나부터가 내가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 산다는 게 마뜩지 않았다. 아마도 30대 초반만 됐어도 다른 동네를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느새 나도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나는 구산동을 중심으로 응암동, 역촌동, 신사동, 증산동, 그리고 구파발까지를 서식지로 정한 후 부동산 중개 어플을 검색했다.  일단 내가 원한 건 역세권이었다. 원래 살던 집은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20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집을 나가서 2분만 걸으면 ’ 여기부터 경기도입니다’란 표지판이 보이는 곳이었다고 말하면 대부분 내가 사는 집의 위치를 이해했다. 바쁜 출근시간에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가 내 사정에 맞게 오는 게 아니니, 자칫 늦잠을 자는 날에는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갔다. 나는 월세가 비싸더라도, 그렇게 소요되는 시간과 기회비용 등을 아낄 생각이었다.


일단 나는 구산동에서는 집을 찾지 않았다.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 살아도 일단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했다. 역촌동, 신사동, 증산동에는 원룸 혹은 투룸의 월세가 많았다. 구파발역 주변에는 오피스텔 건물이 많았고, 새로운 오피스텔 건물들도 들어서는 중이었다. 응암역 주변에도 오피스텔이 많았다. 월세의 시세는 대부분 1천만원에 40만원, 또는 45만원. 나는 응암역 주변이 좋았다. 이곳은 불광천이 가깝고, 이마트도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주차였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자동차가 한 대 있었다. (이 차도 매형이 아버지에게 사드렸던 것이다.) 응암역 주변의 오피스텔은 대부분 기계식 주차시설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 차를 기계 안에 집어넣는 게 싫었다. 게다가 그런 오피스텔은 대부분은 주차비용으로 3만원에서 5만원의 돈을 관리비와 별도로 받았다. 그래서 나는 구파발을 선택했다. 회사에 가려면 연신내까지 3호선을 탄 후, 6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곳 오피스텔 건물들은 지하주차장을 갖고 있었고, 입주자들은 1대씩 무료로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구파발의 시세는 대부분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이거나 55만원이었다. 구파발에서 만난 한 중개인은 “원래 시세대로라면 1000에 60은 받을 수 있는 곳인데, 지금 새로운 오피스텔 건물 하나가 세워지면서 시세가 조금 낮아졌다”고 말했다.


내가 내 집을 찾는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인적 네트워크가 넓었고, 그들 중에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집을 찾아주었던 부동산 중개인도 있었다. 중개인과 여러 집을 보러 다녔던 어머니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그 양반이 그러더라. 이제 집을 사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우리 형편에 어떻게 집을 사냐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구산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빌라 하나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방 2개짜리더라.” 나는 거실도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거실이랄 건 없고, 그냥 부엌이라고 말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 집은 1억 3500만원이었다. 그래? 나는 다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이 8천만원. 엄마에게는 1천만원이 있고, 나에게는 2천만원의 저축이 있었다. 엄마의 돈은 매형과 내가 주는 생활비를 조금씩 모아서 만든 것이었다. 나의 돈은 그동안 대부분 집의 보증금에 쌓였는데, 그 이후의 저축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내가 보증금 2천만원 짜리 오피스텔을 찾는다면 남는 돈은 9천만원. 그렇다면 대략 4천만원 정도를 대출받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 4천만원 대출시 금리를 3.5%로 잡고 240개월로 원리금균등분할상환을 한다면 한달에 내야 할 돈은 어느 정도일까? ‘금융계산기’ 어플이 알려준 숫자는 231,984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주는 생활비 40만원을 30만원으로 조정하고, 내가 돈을 좀 더 아낀다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계산도 했다. 매형이 내주던 월세 30만원, 그리고 생활비에서 월세를 뺀다면, 그리고 어머니 생활비를 조금 더 주실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어머니에게 주던 생활비 대신 매달 이 집의 대출금을 내고 어머니에게 매달 20만원 정도만 준다면? 매형은 돈을 조금 절약할 수 있고, 나는 원래 매달 엄마에게 주던 돈을 쓰면서 내 명의의 집을 갖게 되는 동시에 엄마가 더 이상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집을 사기로 했다. 모든 게 척척 들어맞는 계산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계산은 완전히 틀렸다. 나는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욕구를 몰랐다. 그리고 그런 욕구를 이용하는 중개업자의 전략도 몰랐다. 그리고 집을 사겠다고 했을 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몰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