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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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재산세 고지서를 받았다. 갑근세도 내고, 주민세도 내고, 자동차세도 내봤지만, 재산세 고지서는 처음이다. 서울시 세금납부 어플인 ‘STAX’에 뜬 재산세는 100,580원. 앞서 자동차세를 내면서 받은 마일리지 ‘500’을 써서 100,080원을 냈다. 재산세는 7월과 9월에 나눠서 내니까, 나에게 부과된 재산세는 총 201,160원 일 것이다. 재산세 규모를 보면 알겠지만, 내가 가진 그 재산이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방 2개, 화장실, 거실이 있는 작은 빌라다.
“그럼 이제 자기도 기득권인 거야.”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왔다고 하니, 여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여자친구도 나도 내 재산에 ‘기득권’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자조적인 유머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살며 집 하나 얻는 걸 인생의 과제로 생각한다. 돈이 많아서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은행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자 수익을 벌고 있으며 집을 산 사람들은 그 돈을 갚기 위해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의 대출계약을 맺는다. 그럼에도 안심한다. 대출이자만 낼 수 있다면, 누가 나를 이 집에서 내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안심이다. 방 2개짜리 빌라를 빚을 내서 사서, 재산세도 내고 대출이자도 내는 내가 가진 ‘기득권’이란 바로 ‘(내 의지에 반해) 이사하지 않을 자유’인 셈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자유를 얻기 위해 겪었던 모험담이다. ‘모험’이라 규정한 이유는 내가 집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의심,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 2개짜리 빌라 하나 사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냐고 할지 모른다. 돈이 많으면 2층짜리 저택을 사든, 펜트하우스를 사든 힘들 게 없다. 그런데 10년 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았던 돈과 가족이 지켜온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짜내서 집을 사야 하는 입장은 다르다. 나는 이 집을 사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이 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가 업자들에게 속아서 집을 비싸게 산 건 아닐까? 나는 내 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영위하면서 이 집의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까, 란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 신축빌라를 지어 사람들에 파는 업자들, 그 사이를 중개하는 또 다른 업자들의 미소는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가장 힘든 건 내 선택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의심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들은 왜 이런 집을 사려고 하냐고 물었고, 나는 이런 집을 살 수밖에 없는 논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지 불안하다.
집을 샀던 1년 전 이맘때를 다시 돌이켜보니, 다시 그 이전에 살았던 집들이 떠오른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생애 첫 집으로 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그들이 돈이 없다면, 무리하게 대출을 받거나 돈을 모아서라도 아파트를 구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단칸방과 반지하 빌라 등을 거쳐오면서 살아온 나는, 그리고 은평구 연신내 일대에서 30년 넘게 살았던 나는,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빌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집에서 살아왔는 가는 곧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다. 과거에 살았던 집에는 또 살고 싶지 않아서 전혀 다른 집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과거에 살았던 집이 좋아서 그와 비슷한 집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나는 과거에 살았던 집에서 겪었던 갈등들 때문에 지금의 집을 선택했다.
서점에는 수많은 부동산 재테크 관련 책이 있다. ‘빌라’는 그 책에서 주로 투자 대상의 집이다. 그 책들은 빌라를 거주지로 보지 않는다. 현재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더 많은 재산을 굴리기 위해 빌라에 투자하라는 이야기다. 어떤 빌라가 나에게 돈을 벌어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산 게 아니니까. 단 ‘이사하지 않을 자유’라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 사람이라면, 이 모험담에서 약간의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당신만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