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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라마야나의 집

전망 좋은 집

by 마봉 드 포레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캐릭터 소개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세라비가 라그랑쥬에게 끌려간 후, 레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템푸스 아르카 안의 마법사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흰 옷을 입은 남녀는 레이를 템푸스 아르카의 마법 회당으로 데리고 갔다.


템푸스 아르카의 마법사들의 수장인 대현인 알드바렌은 라그랑쥬와 비슷하거나 나이가 더 많은 노인이었다. 그는 신성한 문자와 문양이 그려진 로브를 입고 꼭대기에 은은한 금빛을 발하는 돌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레이를 맞이했다.


“너는 라마야나의 제자로구나.” 대현인은 레이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레이는 그의 억양으로 그가 오스틴 출신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네가 여기에 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승님이 여기 머무신 것은 아직 저를 거두기도 전이었습니다.” 레이가 말했다. “어떻게 제가 여기 올 거라는 걸 아셨겠습니까?”


“그는 미래를 볼 줄 알았지.” 대현인은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레이는 몸을 깊이 숙여 예를 표하고는, 스승이 살던 집의 위치를 물었다. 대현인이 회당 안쪽을 향해 손짓하자 두 마법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라마야나의 집으로 안내해 주거라.” 대현인은 이렇게 지시하고는 레이를 향해 말했다.


“그 집은 이제 네 것이다.”


레이는 다시 한번 몸을 숙여 인사하고 두 마법사들을 따라갔다.




두 마법사는 레이를 데리고 마법 회당에서 나와 템푸스 아르카의 마법사 거주 구역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둘 다 오스틴 출신으로 이름은 에이덴과 헨렐이라고 했다.


“오스틴 분이 이렇게 먼 곳까지 어떻게 오신 건가요?” 레이가 물었다.


“저희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나라에 와보신 적 있나요?” 에이덴이 말했다. 레이는 “한참 여기저기 다닐 때가 있었죠.”하며 미소 지었다.


“대현인 알드바렌 님도 오스틴 출신이신 걸요. 물론 그분은 아주 오래전에 템푸스 아르카로 건너오셨지만요.” 헨렐이 말했다. “하지만 저희는 동료 마법사들과 같이 전쟁을 피해서 여기로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헨렐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오스틴에서 마법사들을 강제 소집한 다음 전쟁에 투입시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칼하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오스틴과 스칼하븐의 마법사들이 징집을 피해 배를 타고 칼베르나 이카리아의 해안에 잠입한 다음 템푸스 아르카까지 몰래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탈출하지 못한 마법사들은 전쟁에 끌려갔다고 했다. 레이는 잠자코 헨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도 저는 ‘별빛 그림 마법’ 전문이라 끌려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안개 마법’이나 ‘얼림 마법’ 하는 마법사들은…” 헨렐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별빛 그림 마법은 뭐죠?” 레이가 물었다.


“공중에 반짝이는 별빛 그림을 보여주는 마법이랍니다.” 헨렐이 허공에 손을 흔들자 반짝거리는 그림들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몇 초 후 사라졌다. “아이들 미술교육이나 청혼 이벤트에 자주 써요.”


레이는 정말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다. 헨렐은 기분이 좋아서 오스틴의 지역 축제에서 사용했던 그림을 몇 가지 더 보여주었다. 레이가 자신은 파괴 마법 전공이라고 하자, 헨렐은 “아이쿠 저런, 우리나라였으면 제일 먼저 끌려가셨겠네요.”라며 웃었다.


“아무튼 그런 까닭에 지금 템푸스 아르카는 마법사 포화 상태랍니다! 도시 내의 마력도 아주 높은 상태니까 당신이 만약 마법을 더 익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겁니다.” 헨렐은 슬픈 미소를 살짝 띠며 말을 마쳤다.

에이덴과 헨렐이 공중에 별빛 그림 마법을 보여주고 있고 레이가 그것을 올려다보는 이미지

에이덴과 헨렐이 레이를 데리고 당도한 곳은 마법사 거주 구역 끝자락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그곳은 템푸스 아르카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집 앞뜰에 서면 템푸스 아르카 밑에 있는 여러 겹의 산봉우리들과 물결치는 구름의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스승님은 항상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지.’하고 레이는 생각했다. 이카리아 남쪽 그랑쿠르에 있는 라마야나의 집도 이 집처럼 지붕이 나지막했으며 앞뜰에 서면 산 아래 들판과 그 너머 에르피냥의 바다까지 널리 내다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레이는 이 집이 처음 오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았다.


레이는 처마 밑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려고 하였으나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그 문은 아직 아무도 열지 못했어요.” 에이덴이 말했다. “그 어느 언어로 열림 주문을 외어도 열리지 않아요. 마법으로도 힘으로도 열리지도 부서지지도 않아서 라마야나 님이 20년 전 이 집을 떠나신 이후로 쭉 닫혀 있다고 합니다.”


레이는 그제서야 대현인이 이 집은 이제 너의 집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집이 라마야나의 집이라면, ‘보안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라마야나가 세상 어딘가에 또 제자를 만들어 놓지 않은 이상 레이 말고는 절대 열 수 없을 터였다.


레이는 라마야나의 집 문에 달린 묵직한 문고리에 손을 대고 ‘보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헨렐과 에이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레이가 주문을 읊는 것을 바라보았다.


주문은 거의 5분간 이어졌다. 2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육중한 문이 매끄럽게 스르르 열렸다. 헨렐과 에이덴은 라마야나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레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그게 다… 뭔가요?” 에이덴이 겨우 입을 열었다.


“라마야나 스승님은 보안이 철저하신 분이셨죠.” 레이는 그리운 듯이 말했다.


두 마법사는 서로 한 번 마주 보고, 레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만난 적도 없는 대마법사 라마야나에 대해서도 경외심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그곳을 떠났다.


돌집 처마 아래 선 레이가 구름 바다와 산봉우리를 내려다보는 장면. 따뜻한 빛 속 고요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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