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림 May 31. 2020

집앞의 발견, 에비스야 우동

후쿠오카 에비스야 우동

 

 

 일본의 땅을 밟은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전날 밤 많은 짐을 정리하느라 좀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했고, 그 때문에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자버린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시간적으론 많이 잤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곳에 왔다는 사실에 대한 긴장감과 설레임이 섞여, 정신적 피로도가 낮지만은 않은 상태였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지개를 쭈욱 켰다.


 우리가 두달간 살게 될 집은 10평짜리 원룸이었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상. 정말 단기 어학연수에 필요한 물품밖에 없었다. 그래도 TV가 있다는 사실에 나름 만족했고, 새로운 집이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해내보자, 라고 마음먹고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메모장에 적기 시작한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일본에서의 첫 아침인데,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속으로 열심히 고민해봤으나 오늘은 해야 할 일이 꽤 많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버리면 안되었다. 그래서 널린게 맛집이니, 집근처 적당히 괜찮아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살짝 차갑게 느껴지는 1월 초의 후쿠오카. 한국보다 10도 높은 날씨라고 하지만 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쳐갔다. 새로운 풍경과 보지못했던 사람들. 그 사이로 식당들은 흰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서늘한 날씨였기때문에 마치 온천가에 온 듯 하였다. 신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볼 즈음 흰 간판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더듬더듬 일본어를 읽어보니 '에비스야 우동' 이라는 이름의 우동집이라는 걸 알수 있었다. 뜨끈한 우동을 생각하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에 쫄깃한 면을 상상하니 더욱 배가 고파왔다.



귀여운 아이콘이 돋보인다!



서너명 정도 가게의 앞에 줄을 서있는 것을 보고 좋은 예감이 더 커졌다. 그들의 뒤를 잇는 줄에 다가가 서며, 가게 외벽에 붙어있던 메뉴판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일본 우동 콘테스트에서 여러 상을, 심지어 그랑프리까지 탄 역사가 맨 앞장에 쓰여 있었다. 갈비 비빔우동(붓카게우동)으로 상을 탔다고 하지만, 나는 언제나 국물있는 우동을 선호해왔다. 물론 그집의 자랑인 갈비 우동은 언젠가 꼭 먹어봐야 할 명물이겠지만,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하니 뜨끈한 새우튀김 우동이 땡겼다. 에비텐 우동을 주문하고 나서 안쪽 테이블에 착석했다. 작고 아늑한 나무색의 내부가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집앞의 근사한 에비스야 우동



 우동이 나왔다는 말과 동시에 몰려오는 뜨거운 열풍. 순식간에 안경 렌즈가 뿌옇게 변해버렸다. 식기전에 노오란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어보자 혀가 데이고 말았다. 그렇게 안보이는데 대단한 온기를 지닌 녀석이었다. 투명한 면 위로 수북히 쌓인 파를 국물 속으로 잘 스며들게끔 섞었다. 다른 우동과는 달리 면의 모양이 직육면체처럼 각이 져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면타래도 이리저리 흐트려 파와 잘 어우러지게 섞자 또 한번 뜨거운 열기가 후욱 올라왔다. 용기를 내어 뜨거운 면가닥을 한입 집어들었다. 탱탱하고 쫄깃한 면이 입안을 장식한다. 왜인지 사각진 모양 덕에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정보 수집 없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간 것 치고는 매우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간만에 즐기는 원조 우동에 몸도 마음도 노곤노곤해져 갈 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함께 담겨 나온 새우튀김의 튀김옷이 시간이 지날수록 국물에 녹아들어 국물의 맛을 탁하게 한다는 점. 점점 흐려져가는 국물의 색을 보더라도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뭐, 아무리 잘하는 우동집이라 해도 튀김옷이 눅눅해지는 건 막을 수 없겠지. 다음부턴 튀김을 먼저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새우튀김의 끝을 살짝 베어물었다. 국물에 적셔져서 살짝 풀어진 튀김옷을 뚫고 탱글한 새우살에 이가 닿았다. 새우튀김은 언제나 옳다! 나온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처음 튀겨질 때의 온기를 잃지 않은 채 나를 반겨준다. 그렇게 몇번을 베어물다 꼬리 부분까지 도달하고, 그 꼬리 마저 씹어먹는다. 꼬리도 나름 고소하고 맛이 있는데, 그 부분을 안먹고 버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안먹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긴 한데, 조금 슬프다고 해야 할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묘미인데말이지...


 어찌저치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좁은 입구로부터 나왔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면 언제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나기 마련이다. 외벽에 걸려있던 갈비 우동 사진을 언젠가 먹어보겠다는 의지로 힘차게 쳐다봤으나 가만 생각해보니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추천 없이 들어간 식당도 이렇게나 맛있는데, 다른 처음보는 흥미로운 식당들을 제쳐두고 다시 이곳에 재도전하러 올 수 있을까?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널린게 시간이니까, 적어도 식사에선.


 하늘 위 넓게 퍼진 구름이 풍성한 파를 연상케 하였다.




홈페이지: https://ebisuyaudon.com/

전화: +81922621165

주소: 〒812-0018 福岡県福岡市博多区住吉2丁目16ー8

영업시간: 오후 11:30~오후 6:00, 토요일 오전 11:30~오후 6:30, 수요일 휴무





* 저는 음식, 맛집 블로거가 아니며 매장 혹은 점주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받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일본에 단기 어학연수차 2달간 후쿠오카에 체류하면서 나름 최고의 식당을 찾아 떠난 극히 개인적인 체험담을 일기 삼아 브런치에 차곡차곡 담아보려 합니다. 이 곳에 올려진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리거나 촬영하여 편집한 사진으로써 저의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도용하거나 퍼가시면 안 됩니다.

이전 05화 토마토와 라멘의 신선한 합작, 산미 토마토 라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