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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림 May 24. 2020

토마토와 라멘의 신선한 합작, 산미 토마토 라멘

후쿠오카 산미 토마토 라멘 본점

 

 이날은 식사를 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들였던 날들 중 하나이다. 

 학교가 끝난 직후인 12시 반. 이 시간의 나는 여러 가지 감정들로 가득 차있다. 수업에서의 해방감, 점심시간의 허기짐, 많은 수업의 피로감, 그리고 빨리 메뉴를 선정해야 한다는 재촉감. 물론 전날 저녁에 다음날 점심메뉴를 고안해보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 상황에 닥쳐서야 생각 회로가 잘 굴러가는 타입이기도 하고, '메뉴를 골라보자!' 하고 마음먹으면 그 마음이 자꾸 딴 데로 새어나갔다. 여하튼 다시 공복의 메뉴 선정 시간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보면 볼수록 초조해져 갔다. 맛집 추천이라고 해봤자 전부 라멘, 우동, 돈가츠 외에는 없었다. 물론 그 세자기 다 좋아하고, 뭐, 사실 나도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 외의 것은 아직 안 먹어봤기에 뭐라 말할 입장은 되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색다른 걸 먹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런데 창을 내리고 내려도 보이는 건 거기서 거기. '오늘도 우동인가...' 라며 허탈해할 무렵, 문득 아빠가 몇 번이나 추천해준 그 라멘이 떠올랐다. 듣자마자 '엥, 그런 게 있었어...?' 했던 토마토 라멘. 


 후일 다시 확인해보니 집 근처에도, 역 근처에도 식당은 있었지만 나의 실수(=덤벙댐)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고 머나먼 곳으로 목적지를 잡아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되돌이켜보면 도보 40분이나 되는(그것도 학교에서부터...) 거리를 공복 상태에 가방까지 짊어지고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아직까진 K고딩의 밥심의 힘이라 믿고 있다. 내딛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힘이 없어질 때 즈음 눈에 들어온 작은 간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험악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ㅋㅋㅋ


 실은 식당까지 걸어오면서 걱정거리가 대부분이었다. 이토록 오래 걸었는데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아빠 말대로 너무 짜면, 아니면 처음인데 입맛에 완전 안 맞으면 어떡하지 등 여러 가지 근심을 품고 온 것이지만 동시에 토마토와 라멘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이 무척 궁금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무인자판기에 지폐를 넣고 '토마토 라멘' 버튼을 두 번 눌렀다. 


 기다리지 얼마 되지 않았을 참, 기대하던 토마토 라멘이 나왔다.


토마토와 라멘의 기막힌 합작


 항상 나는 면 요리를 먹을 때 국물부터 한 숟갈 떠먹어본다. 그릇 안 내용물이 섞이고 나서는 국물 맛이 처음 나온 상태와 다른 맛이 나기 때문. 갈린 토마토가 녹아든 진한 국물을 넘기자 잔잔한 짠맛이 입안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토마토 국물인가, 기대 이상이다!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내 기준에 걸맞은 국물의 온도였다. 살짝 시원할 듯한 정도의 뜨거움. 그 뜨거움에 심취해 면을 들기도 전 10번이나 국물만 떠먹었던 것 같다. 국물과 면의 비율이 맞지 않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껴 서둘러 젓가락을 찾았다. 놓인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의 젓가락들 중 붉은 토마토와 잘 어울리는 까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가운데로 몰려든 야채 토핑들을 잘 섞어준 뒤, 얇고 꼬들 거리는 면을 들어보았다. 다른 라멘에 비해 면의 두께도 가늘고, 더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외관만 봐서는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과 유사해 보인다. 입에 넣자 안에 잠겨있던 뜨거운 면 가닥이 혀를 데게 할 뻔했다. 전혀 상상이 가지 않던 토마토와 라멘의 콜라보, 그러나 둘의 조합은 누구보다도 잘 어울렸다! 강인하게 다가오는 진한 토마토의 향. 그러나 삼킨 후에는 그 향이 은은하게밖에 남지 않는다. 확실히 예상했던 대로 짜긴 꽤 짰으나, 그 짠맛이 삼킨 후에는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면 자체도, 씹을 때의 식감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른 라멘보다 단단하다. 먹으면서 면이 불을 걱정은 안 해도 됨에 속으로 안심하였다. 

 면 위 올려진 작은 토마토 조각들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나하나 껍질이 까진 채 따스한 국물을 머금고 있었다. 우동 속의 체리 그림이 그려진 어묵과 비슷한 존재로 느껴진다. 작지만 결코 남에게 선뜻 주기엔 아까운 무언가.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해주는 그런 무언가. 어쩌면, 그 한 그릇의 상징이 되는 무언가. 토마토 라멘의 상징인 토마토를 국물과 함께 후룩 떠먹고선 나도 모를 새에 내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상당히 멋진 점심식사 후의 하늘은 전과는 달리 푸르고 맑게 뻗어있었다. 배가 부르자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고, 거리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어깨에 힘을 빼고 옆에 흐르는 조그마한 강과 함께 걸었다. 시골스러운 토박함과 나무로 만들어진 주택들, 정겨운 유치원, 그리고 낡았지만 멀리 뻗은 전봇대와 옛날의 인기 음료가 진열되어있는 자판기.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그 모든 게, 이곳이 시내와는 동떨어진 곳이라는 걸 실감케 해주었다. 토마토 라멘을 먹으러 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많은 것들을 놓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시골 정서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시내에서 도보 40분 거리의 토마토 라멘 가게. 좋은 식사를 대접해주어서, 그리고 나의 시야를 넓혀주어서 고마워요. 






2년 반 만의 재방문. 과연 내 감각이 기억하고 있는 맛과 변함이 없을까, 궁금한 마음을 다잡고 식권을 뽑았다. 그리고 나서 내 앞에 나타난 새빨간 국물의 토마토 라멘. 첫 한입을 갖다대는 순간, 되도 않는 일본어능력을 끄집어내서 메뉴의 부가설명을 읽어 내려가는 과거의 진아림이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뭐, 지금은 꿀리지 않을 정도는 하지만. 입김을 후, 하고 부니 사라졌다. 


 무언가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접시를 반쯤 비웠을 때 떠올랐다. 

학생 할인, 못 받았다......






홈페이지: http://www.333sanmidaimyo.com/

주소: 일본 〒812-0044 Fukuoka, Hakata Ward, Chiyo, 1 Chome−23−29 2号館 元祖トマトラーメンビル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전 12시(자정)까지

기타: 현금결제 ONLY! 자판기 앞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현금을 꼭 준비해 갑시다. 

*혹여나 일본어를 몰라 주문을 못하면 어쩌지 라고 당황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판기 버튼 옆에 한국어와 영어로 메뉴 설명이 적혀 있어요. 그래도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 점 내 한국인 점원께 도움을 청해 보세요!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주신답니다. 






* 저는 음식, 맛집 블로거가 아니며 매장 혹은 점주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받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일본에 단기 어학연수차 2달간 후쿠오카에 체류하면서 나름 최고의 식당을 찾아 떠난 극히 개인적인 체험담을 일기 삼아 브런치에 차곡차곡 담아보려 합니다. 이 곳에 올려진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리거나 촬영하여 편집한 사진으로써 저의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도용하거나 퍼가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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