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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림 Apr 21. 2020

후쿠오카, 단 하루도 오뎅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2020.01.15. 수요일  나의 오뎅문화 답사기

한국어로는 어묵, 일본어는 오뎅(おでん) 이다.  일본 현지의 맛을 소개하는 글이기에 오뎅으로 통일한다.

오뎅 이야기는 할 말이 많아 상, 하편으로 나눈다.


상편, START.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린 듯 비가 쏟아지는 날. 창 밖에서 들려오는 차갑고 싸나운 빗소리. 학원 숙제에 정신이 팔려 언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오려나...' 라고 생각하며 창 밖을 흘긋 보았다. 붉은 노을빛과 먹구름의 어둑함이 섞인 하늘은 저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감을 알리는 듯, 그러고 보니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그치만 배가 그다지 고프지도 않았고, 더구나 세차게 내리는 겨울비를 얇은 비닐 우산으로 뚫으며 하카다역의 식당가까지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물에 젖은 생쥐꼴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택한 저녁은 편의점 저녁이다.


일본3대편의점

일본의 편의점은 꽤 근사하다. 빵부터 커피, 샌드위치, 인스턴트 조리식품, 라멘, 푸딩, 가성비최강의 도시락, 그리고 온갖 종류의 아이스크림과 디저트류까지. 이중에서도 내가 일본 편의점을 애용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인즉  '편의점 오뎅' 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 Q !
후쿠오카 편의점 오뎅


내가 머물고 있는 후쿠오카뿐 아니라 전국 어느 곳의 편의점에서도 오뎅을 만날 수 있다. 계산대의 앞쪽 혹은 계산대로 이어지는 한쪽 끝에 놓인 쇠 통의 칸막이 사이 사이엔, 노오란 육수를 머금고 보글보글 끓고있는 오뎅과 그의 친구들은 누군가로부터 선택되기만을 소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바로 너희들을 택하러 내가 왔단다.


편의점 입구에 들어서면 흘러나오는, 일본에선 너무나 친숙한 이 사운드.

출처 : https://youtu.be/ENyc-Jf6EZE


코 끝을 휘리릭 감싸도는 노곤노곤한 오뎅 내음은 나의 자제력마저 잽싸게 강탈해간다. 메모지에 쓰여진 심부름거리를 장바구니에 담은 걸 확인하고 계산대에 올려 놓는다. 점원이 바코드리더기를 들자마자 나는 말한다.


"아노... 아소코노 오뎅모 오네가이시마스 (저쪽의 오뎅도 부탁드립니다).


과거 회상을 멈추고 돌아와서 ...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을 나서면 코앞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가자 늘 계시던 할아버지 사장님께서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신다. 나도 "콘방와" 라고 맞인사하며 계산대로 향하며 "오뎅 오네가이시마스(오뎅 주세요)" 라고 하자 사장님은 오뎅통의 뚜껑을 여셨다. 순간 밀려오는 따시한 수증기에 내 안경이 뿌옇게 변해 버렸다. 사장님이 일회용 용기를 꺼내는 동안 그 찰나 잠시나마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계란을 두개 넣어봐? 이런 류의 행복한 고민은 오뎅통 앞에 설때마다 늘상 반복되는 매크로현상이랄까. 허나 내 주문은 언제나 비슷했다. 사장님께서 집게를 들기가 무섭게 내가 말하였다.


"곤약 하나, 실곤약 하나. 또 무 하나랑... 마지막으로 계란 하나요. 국물 많이 주세요."


오뎅이 식을까봐 두손가득 비닐봉투를 들고서 부랴부랴 집에 돌아왔다. 플라스틱 뚜껑에 맺힌 송글송글한 물방울 덕에 안이 잘 보이지 않는게 마치 습식 사우나와 다를 바 없다. 뚜껑을 열자 몰려오는 따시한 열풍! 벌써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식기 전에 뜨시한 국물부터 마셨다. 한국의 그것 만큼 진하진 않고 오히려 순하고 연한 맛이다. 그러나 은근한 국물의 중독성은 한끼 식사를 대체하게 만든다.


오뎅 계란

계란은 한번 베어 문 이상, 잽싸게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른자가 풀어져서 국물의 맛을 탁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 뭐, 노른자를 먼저 먹어버리면 되지만 그건 결코 간단치 않다. 은근한 간장 맛을 내는 계란. 실제로도 살짝 갈색을 띠고 있어 간장에 절인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라멘에 들어가는 쇼유계란만큼 짜지는 않다. 육수가 베인 건가? 덕분에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질리지 않고 한판이라도 도전할 수 있다.  

오뎅 곤약

샌드위치같은 삼각 모양에 칼집이 슥슥 나있는 탱탱한 곤약. 회색빛 몸에 나있는 까만 점은 마치 자갈처럼 보이지만, 한입 베면 표현하기 애매한 식감과 만나게 된다. 심하게 쫄깃거리지 않아 씹을 때 부담이 되지 않는 그 정도의 탱탱함을 즐기는 것이 이 친구의 공략포인트다. 위에 나있는 칼집은 역시 씹어서 끊기 편하도록 내어놓은 것 같다. 

오뎅 실곤약

실곤약은 먹기 쉽지 않다. 희고 가느다란 실곤약 이 친구들은 스스로를 지키듯 똘똘 뭉쳤다. 곤약 타래와 비슷한 모양이긴한데 그냥 베기도 쉽지 않은 곤약이 이토록 뭉쳐 있으니 이 또한 먹는 방법이 분명 있으리라. 어쨌든 오뎅 국물을 베이스로 한 곤약국수를 먹는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 어떤 국수보다도 쫄깃한 실곤약, 이리 저리 젓가락을 피해다니는게 마치 한여름 축제때 금붕어뜨기를 했던 추억을 끄집어 낸다. 앞니로 쉽사리 씹어지지 않는 굳은 신념의 실곤약이지만 승부욕 때문인지 노리는 걸 멈출 수 없다. 

미안해 친구야, 고집센 놈일수록 나는 끝을 봐야하거든.


오뎅 친구들중에서도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무우' 에 대한 소개는 2부에서 만나야겠다.

믿거나 말거나 오뎅에서의 '무우' 는 신의 한수다. 


1부는 여기까지.

2부는 며칠 좀 쉬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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