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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대출의 세계와 그냥 세계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8월

04


기다리고 기다리던 00 구청의 소상공인 지원 융자 공고가 떴다.

이곳에서 대출은 크게 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 나뉜다. 담보대출은 말 그대로 돈을 빌리는 대신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갈 맡기는 것이고, 신용대출은 사업장 신용을 바탕으로 대출 승인이 이루어진다. 같은 대출을 받고자 하는 곳에서도 갈림길이 있고, 무언갈 더 쥐고 있는 사람에겐 조금 더 쉬운 길을 알려준다.

담보대출(이곳에선 아파트만 담보로 인정해 줬다, 아무래도 담보의 가치를 평가하기 쉬운 것이 아파트니까)은 은행에서, 신용대출은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접수가 이루어졌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란 곳에 통화를 시도했다. 담당자는 굉장히 정신없어 보였지만, 엄청 정중하고 다정한 말투로 조곤조곤 설명해 주셨다. 서점의 사업 경력과 매출 등 서점과 관련된 모든 것을 차분히 물어보시곤 결론을 내리셨다.


이곳에선 서점의 보증을 서줄 수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건 아니고 엄청 친절하게 돌려 돌려 말해주셨는데 요지는 이러했다.

리빙포인트 하나, 정중한 거절을 당하면 그 당시엔 이것이 거절인 줄도 모른다. 덕분에 거절 당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시간은 조금 걸려도 다정하게 배려해 주는 사람 최고.


대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아닌 눈에 보이는 증빙이란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어른의 돈 빌리는 법. 사업장의 업력과 매출 신고 내역이 기본 증빙이 되는데 나의 작고 귀여운 서점은 운영 기간이 길지도, 매출이 크지도 않아(아주 작고 귀엽다) 두 가지 조건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선 00 구청의 융자 대신 창업 보증이란 다른 융자를 추천해 줬다.

00 구청에서 지원하는 융자와 창업보증의 차이점은 자금의 출처로 보였다. 00구 자금인가, 서울시 자금인가로 융자의 종류가 나뉘었다. 무엇보다 00구 융자의 가장 큰 장점은 금리가 굉장히 낮았다. 1.2%, 게다가 고정금리. 반면 창업 보증은 3개월 변동금리로 날짜 기준 2.8% 정도.

여기서 공통점은 서울신용보증재단을 통해 보증과 융자를 받으면 보증료라는 것을 내야 한다는 것. 연 1%의 보증료는 담보는 없지만 대신 이 사업자가 돈을 잘 갚을 능력이 된다는 보증을 이곳에서 서주는 비용이라 할 수 있다.


금리가 엄청 낮은 00 구청 융자는 조금 더 서점의 힘(서울신용보증재단이 날 신뢰해서 보증을 서줄 수 있을 정도)을 키운 후에 다시 도전해야 했고, 창업 보증은 당장 신청할 순 있었으나 일단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다. 예상했던 금리가 두 배 이상 증가했으니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돈을 빌린다는 건 갚아야 한다는 것이니 신중해질 수밖에. 역시 남의 돈은 버는 것도, 빌리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낯설지만 신선한 대출의 세계. 신용보증재단의 존재 그리고 금리와 보증료의 세상. 서점원에겐 여전히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 너무나도 많다.



번외) 현실과 조금 거리를 둔 소소한 이야기들 모음

대학교 3학년 학생 둘이 네이버 영수증 리뷰를 써주겠다고 해 기다리면서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들.

두 사람은 동기지만, 한 살 차이가 나고 전공도 다르지만, 친하게 지낸다는 이야기.

학교 축제는 왜 이렇게 빨리해요? 라고 물었지만, 학생들도 모른다는 이야기.

서점원은 학교 축제 구경 갈 거라는 이야기(그 이야기에 손뼉 쳐주는 학생들, 귀엽다).

개강이 4일밖에 남지 않아 슬프다는 이야기.

갑자기 배우 누군가를 닮았다는 이야기(어맛). 칭찬에 후한 학생들.

그래도 기분 좋아져서 또 놀러 오라는 화기애애한 이야기.

덕분에 웃게 되는 이야기.



8월 27일 수요일

서글프다가도 웃게 되는 나날들



서점원의 문장과 책

: 돈이 없어서 받는 큰 고통 중 하나는, 빚쟁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또는 그 소리가 들릴까 봐 미리 느끼는 침묵의 불안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공진호 옮김, 아티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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