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아산 외암 민속마을에 예약을 해 놓았단다.
갑자기 웬 외암 민속마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어서 생소하였다. 바로 인터넷으로 뒤져보고 아름답네. 그럼 가자. 기왕 예약해 놓았다니 가야지 하고 4월 초에 출발하였다.
수원에서 출발 오산 평택 고속도로를 거쳐 12시경 아산에 도착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식사 후 외암 민속마을로 향했다. .
차가 마을 앞에 이르자 냇가가 길게 펼쳐졌고 마을이 다리로 이어졌다. 길옆으로 늘어선 기다랗고 야트막한 돌담의 행렬 그야말로 別有天地(별유천지)가 나타났다. 어떻게 이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돌 들이 나왔으며, 나왔다고 한들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운 돌담들이 쌓여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단 말인가.
예약한 숙소 또한 행랑채를 개조한 초가집이었다. 대문을 싸릿대로 엮어 놓아, 구멍 난 곳으로 바람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집주인의 안내 또한 단출하다. 추우면 바닥 보일러를 틀어 놓으란다.
숙소는 마을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짐을 풀고 문밖 왼쪽으로 흐르는 냇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냇가에 무엇이 있나 들여다본 순간 두 눈을 의심케 할 만한 식물들이 냇가를 따라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미나리. 그렇다. 자연 미나리였다. 텔레비전에서 농부가 키우는 하우스 미나리는 보았어도 이 마을처럼 깨끗한 냇물에 자라는 자연산 돌미나리는 처음이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샛길, 아름다운 돌담과, 상큼하고 신선한 공기를 가진 마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사랑스러웠다.
우린 마을에 만들어진 골목길을 한적한 석양빛을 받으며 걸어 다녔다.
꽤 큰 규모 기와집 마당에 굵게 자란 노송에서 기품이 있는 품위를 느꼈고, 드문드문 보이는 초가집에선 내 어릴 적 살던 마을을 현재로 가져오는 착각과 기쁨을 맛보았다.
나 역시 유아기와 초등학교 시절 초가가 있는 동네에서 자랐고, 흙내 풀풀 나는 마당에서 뒹굴며 컸다.
살던 집 마당 가운데 시원한 우물이 있었고, 여름이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그 물을 마시고 대야에 받아 등목 하던 기억이 난다.
겨울엔 우물 주위에 얼어붙은 얼음을 돌로 깨서 한 조각 입에 물면 입속이 얼얼하여 말이 헛나올 정도였다.
이런 추억들을 소환하게끔 만들어준 마을은, 더욱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은 어른이 된 후에 경험해 보지 못했다. 신선했고 자극적이지 않은 은근한 기다림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여름밤 城(성) 위에 올라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았던 무궁무진한 별들과 별똥별을 바라보며 품었던 무한한 상상. 그리고 십여 년 전 팔월 강원도 홍천 지인 집 마당에서 경험하였던, 그 황홀했던 밤하늘의 아릿함을. 오늘 예서 바라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입가에 벙싯 웃음을 올렸다.
허리가 배길듯하여 요 두 장을 깔고 바닥이 쩔쩔 끓는 방바닥에 몸을 뉘었다.
바닥은 끓고 이불 밖으로 나온 입으로 온기를 내뿜어 보니 허연 입김이 나온다. 4월은.
오늘 하루 고단함에 저절로 잠이 들었고 집 마당 근처 감나무 가지 위 소쩍새가 운다.
그 애잔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4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가 마당 한가운데 섰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두칠성이 보이고 오리온자리 별 삼 형제가 머리 위에 있었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두 눈 가득히 들어왔고, 새벽 공기의 상쾌함과 더불어 느껴지는 행복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닭 우는 소리에 깨 아내가 준비한 이른 아침을 먹고 다시 한번 마을 길 산책에 나섰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어제 보았던 개울에서 맑고 깨끗한 물소리가 수런수런 들려오고 조용한 마을에 아침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아름다웠다.
이 말밖에 어떤 수식어가 필요하랴.
마음이 깨끗해지고 포근해지는 정경에 깊은 감사가 절로 우러나왔다. 두 손을 모으고 내가 여기 있음에 지금 여기에서 이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기쁨이 가득 몰려온다.
어제 보았던 돌담이 돌담길이 아침 햇살에 옅은 안개를 밀어내며 나타난다.
정겹다, 극진한 아름다움이다.
마을이 들어선 지형조차 심상치 않다. 마을 뒤로 봉우리 두 개가 솟아있고 그 주위로 야트막한 산들이 둥글게 무리 지어있다. 앞으로는 넓은 개울이 지나간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전형적인 명당이다.
주위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은 마치 산모가 태아를 감싼 듯 아늑하고 정겹고 포근하다.
마을을 둘러보다 항아리에 차 이름을 표시한 카페 앞마당에서 재미난 글이 있어 퍼 옮긴다.
❝손님만 들어오시오❞
난 손님이 아니어서 들어가진 않고 사진만 찍었다.
일견 야박한 문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관점을 달리하면 타당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손님만 와서 따듯한 차 한잔 마시고 쉬어가시란 배려 아닌가.
그리고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된 것은 마을에 편의점이 없는 것이었다.
불편하겠지만.
마을에 편의점이 없는 것이 외려 분위기를 해치지 아니하고 그들만의 향기와 정서를 지니게 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해결할 식당조차 마을 밖에 위치하여 마을 정서에 맞는 듯하였다.
장소를 이동하기 위하여 숙소로 향했고 하루 신세를 진 집안을 둘러보았다. 집 안에 꽃들이 활짝 피어 벌과 나비들의 낙원이 되어 있고, 집 뒤 텃밭엔 주인의 정성이 담긴 푸성귀 싹들이 돋아나 있었다.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곳이 있었다. 처마 속 마루 위에 제비가 집을 지어놓았다. 집주인이 그 아래 나무 받침대를 매어 놓아, 제비와 사람이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는 것이었다.
묵었던 집이 초가집이었고 바람에 초가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묶어 놓아 수고로움이 더하여졌음도 알 수 있었다.
세 칸집 마루 중앙에 매달린 나무줄기는 어릴 적 보았던 시렁이었다. 공간 활용에 대한 걸작이었고, 畵龍點睛(화룡점정)이었다.